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북데일리
  • 승인 2005.08.20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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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기자, 인터뷰이, 독자.

수첩, 볼펜과 녹음기를 들고 질문에 대한 답을 달라고 조르기 잘하는 기자가 있는가 하면 무슨 질문이든 해봐라, 다 받아준다는 `메가패스식`의 인터뷰이들이 있고 이들의 만남을 글로 신나게 읽어주는 마음좋은 독자들이 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생각의나무)는 패션지 바자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김경의 22인 인터뷰집이다. 보통 인터뷰집이라고 하면 화려한 컬러에 유명인들의 사진이 속속 채워지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런 기대감을 다소 저버린다.

손에 베일듯 칼날같고 고급스러운 컬러지도 아니고 사진도 그리 많지 않다. 장동건의 경우 그 잘 생긴 얼굴 한번 사진으로나마 보려고 목차에 나와있는 페이지를 확인하고 책장을 넘기고 넘겨 찾고나면 보람도 없이 얼굴 실루엣만 나와 있다. 초상권 때문에 사진 게재 허락을 미처 받지 못했다는 이유. 장동건의 팬들은 아쉬움을 가슴에 안은 채 김경 기자와 장동건이 쏟아놓은 인터뷰 내용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이번 인터뷰집에 실린 인터뷰이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다. 개성이 넘치다 못해 주변 사람들이 그릇들고 따라다니며 그 넘쳐나는 개성들을 주워담아야 할 정도다. 자기 주관과 고집은 또 어떻고.

김훈은 이렇게 얘기했단다. 책에 나와있는 대로 토씨 하나 안 틀린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어쨌든 같은 의미로 말한다면 "남들이 나를 욕한다고 해서 내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고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내가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나의 삶을 살 뿐이다."라고.

소설 `칼의 노래` 아니, 그의 작품 전부가 원고지에 친필로 쓰여졌고 컴퓨터 두드리는 것 자체를 아예 모르는 사람이며 자전거를 그의 애마로 사용한다는 것쯤은 웬만한 사람들도 알고 있을 터.

복잡한 듯 보이지만 그리 복잡한 사람도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칼의 노래`를 읽고서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하면 "하라"고 했다가 바다 전투신 때문에 제작비가 엄청나게 들것 같으니 육지 전투만 가지고 찍으면 안되겠냐고 했더니 두말 없이 "하지 마라"고 했단다. 돌려 말하고 빗대어 말하고 뜸 들여 말하고 속내 숨기기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김훈이란 사람은 그래서 튈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시인 함민복은 "시를 아침에도 쓰지 않고 저녁에도 쓰지 않고 마감 때 쓴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사람은 자신의 왼손에 `시`라고 쓰여진 손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시대 최고의 희극지왕 주성치는 김경 기자에게 특별한 인터뷰이었다. 평소 기자들 사이에서 인터뷰하기로 힘든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그를 인터뷰한 것도 그렇거니와 영화 속 쿵푸까지 시켜봄으로써 주성치 팬들 사이에서는 거의 전설적인 존재로 남아있다는 것이 저자의 고백이다.

한국에 주성치의 팬클럽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며 반가움과 감사를 표시했다는 주성치. 그와 더불어 국내에서는 `주성치 영화를 보는 사람`과 `주성치 영화를 보지않는 사람` 두부류로 나누어 진다고 하면 그의 반응은 또 어떨까.

사랑스러운 몬스터로 찍힘을 당한 배우 강혜정은 기자들에게 있어서는 꼭 만나보고 싶은 인터뷰이 중 한 사람이다. 표현력이 웬만한 글쟁이 빰친단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 대한 느낌을 표현해 달라고 하자 기다릴 틈도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꽤 높은 곳에 도착한 후 문이 열리고 나서보니 그 층에 있는 전기가 모두 나갔을 때의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타다만 담배를 들고 지긋이 독자들을 향해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같은 표현력이 거져 나온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을 거다.

`눈 먼 도덕 군자들` 사이에 있는 개그맨 신동엽은 또 어떤가. 자신에게 솔직하고 상대방에게도 솔직함을 강요하는 진짜 담백한 사람이다. `회당 출연료 7백만원짜리 개그맨`이라는 말이 돈을 밝힌다기 보다는 지금까지 방송 생활을 통해 일궈낸 피와 땀이 담긴 수확물이라는 사실을 잠시 기억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작가 김훈으로 시작된 인터뷰는 시인 함민복, 배우 강혜정, 황신혜밴드의 리드보컬이자 이중무규칙 예술가 김형태를 거쳐 웰컴 투 싸이월드를 외치는 싸이, 박재상까지 함께 소개한다.

김경의 문체는 그녀의 말투와 흡사할 것 같다. 어떤 복잡하고 딱딱한 격식이 그녀에게는 그리 필요하지 않을 듯 싶다. 소탈하면서 예민하다. 굵직굵직하면서 아기자기한 멋도 있다.

기자로서의 자존심, 에디터로서의 감각, 그리고 인터뷰어로서의 능력을 뺏고 싶다면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라. (사진 = 출처 팬엔터테인먼트, 생각의 나무)[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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