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세상을 점령했다, 나를 훔쳐갔다
책이 세상을 점령했다, 나를 훔쳐갔다
  • 북데일리
  • 승인 2006.11.0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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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읽고 읽히는 것들 천지이다. 저런! 지렁이가 쓴 필생의 문서를 배고픈 씨암탉이 꿀꺽 읽자, 그 집의 백년손님이 살진닭다리를 툇마루에서 덥석 읽지 않는가? 아무것 읽지 않는 자는 오직 바위와 같은 무정물뿐인 것 같지만 잘못 짚었다. 자세히 보면 바위조차도 `봄 햇살`과 `여름 땡볕`과 `가을 햇볕`과 `겨울 햇빛`을 또렷하게 구분하고 읽고 있다. 계절마다 그의 등짝을 만져본 사람은 그것을 알 것이다. 느리지만 깊게 읽고 있다” (본문 중)

세상은 온통 읽고 읽히는 것들 천지라니,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지. 좀 더 읽어내려갔더니 반칠환, 이사람 꽤나 재미있는 사람이다. 누에는 빗소리를 내며 뽕잎을 읽고, 개구리는 가갸거겨 무논을 읽는단다. 가으내 귀뚜라미가 달빛 전집을 읽는 동안 독서광인 바람은 여름내 독파한 팔만사천 나뭇잎 장서를 모두 단풍 불에 살라버리고, 강물 과 바다에 이는 파랑을 읽으러 달려간다고 한다. 결국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동물, 곤충, 식물, 그리고 무생물까지 모두가 무언가를 읽고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귀뚜라미는 달빛을 읽고 더욱 귀뚜라미가 되고, 암탉은 지렁이를 읽고 더욱 암탉이 되었으며, 바람은 계절을 읽고 더욱 바람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읽는 이유 또한 더욱 우리가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내가 더욱더 내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읽는다. 이 사람이 소개하고 있는 18명의 사람들은 이미 잘 알려진 유명인사들이다. 그들이 틈틈이 읽는다는 행위, 그리고 읽음 자체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이다. 읽는다는 것, 이것은 독서라는 말로 통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독서란 어떤 것인지 이야기를 들어보기 전에 곰곰이 나에게 있어서 독서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나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시간을 죽이는 행위의 일종이다. 책이 좋아서 책과 함께하고파서 읽는 것보다 그 막막한 시간의 시간을 어찌할까 몰라 책을 읽는다. 적어도 책을 읽는 시간동안만큼은 나는 그 책의 등장인물중 하나이다. 다음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게 책장을 넘겨주는 것이 내가 할일. 한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잠시 내 역할의 끝남에 다시 무엇을 해야 할 몰라 또 다른 책을 집어 든다. 그렇게 쌓여가는 책의 높이만큼 내 삶의 시간도 줄어든다.

그런데 인터뷰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책 속의 인물과 닮아있다. 내가 책 속에서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을 할 뿐이라면, 그들은 그 등장인물을 현실로 데려온다. 그리고는 자신이 그들이 되어버린다. 아!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책 속의 인물들이 현실에서도 버젓이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하고 나와 같이 숨 쉬고 있다니... 이는 책이 세상을 점령한 것이다. 그리고 나를 훔쳐갔다.

몸을 나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못하는 `장영희 선생님`은 얼마 전 읽은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의 주인공 헬렌켈러 같다. 아침마다 사람들에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고도원`씨는 아침마다 파트라슈와 함께 신선한 우유를 배달하던 `네로`와 닮았다.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가 잘 어울리는 `한비야`씨는 톰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허클베리 핀`과 똑 닮았고,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김미화`씨는 울지 않고 잘 웃는 `캔디`와 닮았다.

이렇게 그들은 책에서 세상을 배운다. 책에서 배운 세상을 현실에서 응용한다. 책은 세상과 통하는 길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당신이 인터뷰한 18인을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로 비유한다. 인간 세상에 신의 불을 훔쳐서 가져다 준 그 사람, 그 벌로 평생을 굴러떨어진 돌을 뽀죡산에 옮겨야 하는 형벌을 받았지만 그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하나로 평생을 만족하며 살았다.

작가가 프로메테우스로 비유한 이들도 그와 같지 않을까? 자신이 책에서 훔쳐온 진실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주는 것, 그렇게 사람들이 넉넉한 마음씨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 그것 때문에 그들은 책 읽기를 멈추지 않고, 또 사람들에게 책 읽기를 권한다.

아직까지 난 책에 어떤 길이 있는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뚜렷하게 알지 못한다. 단지 내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의 남음을 책 읽기에 매진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내 책을 주며, 빌려주며 책 읽기를 권하는 三痴일 뿐이다. 하지만 책을 읽는 행위 자체는 매우 소중하다. 내 책 읽기의 행위가 그리고 책 읽는 버릇이 한결같이 이어지기를.. 나는 소망한다. 나는 책에 마음을 빼앗긴 한 사람일 뿐이다. 책은 나 자신을 훔쳐간 장본인이다.

[북데일리 장하연 시민기자]xx200020@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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