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끼니걸러7천권 50대 독서광 부러운 삶
①끼니걸러7천권 50대 독서광 부러운 삶
  • 북데일리
  • 승인 2006.10.2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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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광의 방] 헤이리에서 게스트하우스 운영하는 이안수씨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 ‘만물을 만들고도 관여치 않으며, 성장시키고도 소유하지 않는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노자는 자연과 만물을 활동하게 하고도 그 노고를 사양하지 않으며, 만물을 생육하게 하고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生而不有(생이불유)’라는 표현을 썼다. 그것을 되새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엇이든’ 쉽게 놓지 못하고, 나누지 못한다. 좋아하는 것, 공들인 것, 길러낸 것을 소유, 집착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체가 독서광이고 대상이 ‘책’ 이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독서광은 책으로 시간을 쓰고, 살 기운을 얻는다. 책을 모으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은 억만장자의 부와도 비교 할 수 없는 천상의 기쁨이다. 집안에 들여진 책은 그래서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주인의 수집에의 욕망과 집념은 책의 운명을 한정된 공간 안에 밀어 넣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독서광에게 있어 책이란, 나눌 수 없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헤이리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 ‘모티프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안수(50)씨의 서재 역시 그런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으로 접한 책장과 수천 권은 넘음직한 방대한 분량의 책들은 그의 수집광적 기질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직접 만난 그는 수집광도 메모광도 아니었다. “생명이 있는 꽃으로 장식을 하는 것이 잔인하게 느껴져 죽은 식물의 가지를 꽂아 둔다”는 그는 ‘生而不有(생이불유)’라는 말뜻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이 씨는 관심이 줄어든 책은 필요한 곳에 기증하고 나눈다. 그의 희열은 소유하고, 수집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가운데 생성되는 것이다. 자유인이자 독서광이며 여행광인 그는 “책 만이 나의 방랑벽을 잠재울 수 있다” 며 해맑게 웃었다. 육체는 늙어가지만, 그의 영혼은 영원한 소년이다.


“인생의 후반기에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이 씨는 20년간 잡지 기자, 편집국장으로 일했다. 일 밖에 모르고 살던 어느 날, 삶의 후반기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TV를 보면서, 신문을 읽으면서 늘 취재 아이템을 고민해야 했던 ‘퇴근 없는 일’이 너무나 지겹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미국이라는 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많은 이들이 이민국가로 희망하는 미국은 어떤 나라이며 그 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발동했던 것이다. 결국,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건너가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이 안정된 마음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Hospice Education’을 공부했다. 지금까지의 삶이 자신과 가족, 회사만을 위한 이기적인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봉사적인’ 삶을 원했기 때문이다.

떠날 때 품었던 사람에 대한 호기심만은 쉽게 충족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배낭여행이었다. 지도와 코펠을 챙겨 130일간 90여개 도시를 떠돌았다. ‘렌트를 하지 않는 것’과 ‘호텔에 묵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대중교통, 히치하이크로 현지인의 거실, 택시회사의 사무실을 전전했다. 원 없이 여행을 하고 나니 더 이상 미국이라는 땅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졌다. 미련 없이 짐을 싸서 귀국했다. 돌아와서는 본격적으로 후반기 삶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해외로 나가지 않고도 여행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라는 고민에 대한 답으로 여행자를 집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떠올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곳,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만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아티스트 레지던스, 가족이 거주할 수 있는 주거공간까지 가능한 ‘모티프 원’은 1년여 간의 설계, 10개월간의 건축기간 끝에 완성되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집을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투를 올렸다 해도 어른이라고 할 수 없다’ 집을 지으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이씨는 집을 지으며 자신이 조금 자란 것 같다고 했다.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던 일이었지만, 다행히 두 딸과 아들, 아내는 그의 뜻을 따라 주었다. 여행할 때 같은 길은 다시 가지 않는다는 이 씨. 그에게 ‘모티프원’은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방랑벽을 잠재울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다.

(사진 = 고아라 기자)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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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50대 청춘독서광 "읽는 책마다 사랑에 빠져요"
③ 50대 청춘독서광 "책에 몰빵... 빚졌지만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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