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행복하게 만든 `나쁜 여행`
나를 행복하게 만든 `나쁜 여행`
  • 북데일리
  • 승인 2005.08.16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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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극한 체험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42.195㎞ 풀코스 마라톤이 부족해 50km, 100km 마라톤이 생겼다. 심지어 4,700km 최장거리 마라톤까지 만들어졌다.

참가자들은 24시간에서부터 무박 6일까지 자신을 몰아부치며 달린다. 임진각에서 해남 땅끝 마을까지 쉬지 않고 달리는 자전거 레이싱이 있는가 하면, 흉가만 골라서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다.

극한 체험은 삶을 새로운 시각에서 돌아보게 만든다. 물론 체험을 한 이들은 누구보다 풍성한 이야기와 추억을 갖게 된다.

`나쁜 여행`(2005. 아이원)은 유럽 3500km를 자전거로 여행한 이야기다. 스무살 대학생 이창수는 유럽지도 한 장과 옷 상-하의 각각 두 벌, 비옷, 소형 라디오, 디지털 카메라만 달랑 챙긴 채 유럽으로 떠났다.

책 이름이 `나쁜 여행`인 이유는 지은이의 아버지가 보낸 편지에서 잘 드러난다.

"왜 하필 자전거 여행인 거니? 기차 여행이나 버스 여행 같은 건 생각해 본적 없니? 네 말대로 하루에 100km를 간다고 치자. 힘들어서 뭐하나 제대로 구경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구나…네 능력을 잘 생각해 봤으면 한다. 넌 평소에 자전거를 타지도 않잖니…

네가 여행 준비한 지 얼마나 됐는지 생각해 봐라. 고작 2주밖에 더 되니? 그리고 여행한다면서 여행책자 한 권 읽기는커녕 머리 염색한 것 말고는 한 게 없잖니…

끝으로 부모에게 걱정 끼치는 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란다. 네 엄마 걱정이 심하다. 이렇게 네가 떠나면, 너 잡아오라고 날 유럽으로 보낼지도 몰라.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아예 떠나지 말아라. 앞으로 두 달간은 너보고 공부하란 얘기 안 하마."

이 책이 독특한 이유는 여행기이면서도 유명 관광지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은이가 생각한 여행이란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책 내용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면서 본 풍경과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자전거가 비행기처럼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과정이 생략되는 여행이 아니라는 특징이 책 속에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돈키호테 애호가 마이클, 길을 묻자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 마드리드에 사는 무명 화가 루이스 로이드, 처음 만난 여행객에게 자신의 독방을 내어 주고 편하게 다니라고 열쇠까지 내어준 질베르 신부, 69살에도 LG카드에 나오는 이영애처럼 멋진 삶을 사는 볼프강 노인, 진심을 보여준 친구 로베르토 등 수많은 인물들이 저자가 만난 인물들이다.

`나쁜 여행`을 통해 저자가 얻은 것은 `행복`이다. `행복이란 멀리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지은이는 행복을 얻는 방법을 넌지시 알려준다.

"사실 여행 내내 나를 즐겁게 했던 것은 바티칸이나 콜로세움같이 유럽의 호화롭고 유명한 것들이 아니다. 우체국도 가 보고, 서점도 들르고, 학교의 운동장에도 한 번 들러보는 것, 공원에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 웃으며 `반갑습니다`하고 인사를 건네는 것,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고개를 들어 한없이 푸르른 하늘을 쳐다보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거창하지 않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들, 우리가 `생활`이라고 부르는 것들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일들이 나를 즐겁게 한 것이다."[북데일리 김대홍 기자] paranthin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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