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소녀의 비밀 모험...`스릴과 사색` 가득
가출 소녀의 비밀 모험...`스릴과 사색` 가득
  • 북데일리
  • 승인 2006.10.0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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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태어났지만 펜실베이니아 작은 동네에서 자라고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한 여자애가 있었다. 그 여자애는 공과대학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자신이 화학에 소질은 있으되 기질은 엇다는 것을 깨닫고, 플로리다로 이사를 갔다.

그 곳에서 사립여자고등학교의 화학 선생으로 일한 그녀는 자신이 실험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학생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화학*감정 반응에 더 관심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가 1968년 39살의 나이로 펴낸 책 <클로디아의 비밀>(비룡소. 2002),<내 친구가 마녀래요>(문학과지성사. 2002)는 동시에 미국 청소년 문학상인 뉴베리 상을 수상하게 되어 문단에 주목받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녀가 자신의 막내인 셋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과 학생들과 함께 하면서 관찰하고 공유했던 기억들을 글로 옮기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끼게 되어 본격적으로 습작 활동에 들어갔다.

코닉스버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언제나 착한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전형을 파괴하고 싶었습니다. 내 안의 소리가 말했습니다. ‘뭔가 다른 것도 말하세요’라고. 겉으로는 기분이 좋아 보여도 속은 전혀 그렇지 않은 일도 흔히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이상한 기분이 드는지도 이야기하라고. 어떻게 하면 일반 사회의 규범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이야기하라고.”

그녀의 작품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관한 책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 1997년 다시 한 번 뉴베리 수상작이 된 <꼬마 철학자들의 비밀 파타> 까지 읽어보면 그녀가 화학 실험을 통해 사람들 마음속의 여러 원소들이 반응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리를 깨우친 마음의 연금술사로 보이기도 하고, 다양한 소재를 한 데 섞어 기이하면서도 매력적인 이야기로 제작하는 마법의 수프를 만들어내는 마녀처럼 보이기도 한다.

위 표지는 <클로디아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그녀의 첫 발표작이다. 원제는 [From the Mixed-up Files of Mrs. Basil E. Frankweiler]인데 원제로 부터 우리는, 바질부인의 파일 박스 더미 속에서 건진 무엇인가가 이 스토리에 큰 소재가 되고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E.L. 코닉스버그는 여러모로 출중한 재능을 갖고 있다. 표지의 그림과 내지의 삽화들 모두 그녀가 그린 스케치들이니, 그녀가 자신의 다른 책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의 소재거리를 제공한 모나리자의 작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연상시킨다.

이야기는 바질 부인이 주인공 클로디아의 할아버지이자 자신의 변호사이기도 한 색슨버그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로 부터 시작된다. 엄청난 갑부의 학자인 바질 부인을 찾아간 클로디아와 그녀의 동생 제이미는 그들의 현명함의 대가로 바질 부인으로부터 엄청난 역사적 비밀이 담긴 미젤란젤로의 천사 조각상에 대한 문서의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클로디아는 동생 제이미를 데리고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가출을 한다. 가출의 이유는 일상에 불만이 있거나, 가족들이 싫거나 학교생활이 시큰둥해져서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울타리 밖 세상을 온전히 느끼며 성장하고 싶었을 뿐이다. 제이미와 함께 시작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의 가출 생활, 만만하지는 않다.

우선 관리인들의 눈을 피해 잠 잘 곳을 찾아내야 하고, 화장실에서 마음껏 샤워도 못하고 배불리 먹지도 못한다. 약간의 돈을 모아 가출을 했지만, 경제관념이 철저한 동생 제이미가 없었더라면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거의 빈털터리 신세로 미술관에서 지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둘은 철저한 계획 하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관람한다. 이집트 관에도 가고, 중세관에도 가고, 그들은 하루하루를 의미없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커리큘럼에 따라 자율학습을 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비록 미술관에 전시된 16세기 침대에 숨어들어가 잠을 자고, 분수대에서 남몰래 목욕을 하며 근근이 버텨가지만, 남매는 어느 날 특별 전시 중인 미젤란젤로의 천사상에 매료된다. 위작의 소문이 있는 작품의 진실을 캐내기 위해 그 둘은 미술관을 슬쩍 빠져나와 시립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뒤적이기도 한다.

그들은 역사의 뒤안길에 숨겨진 비밀을 탐사하는 학자들처럼 필요한 자료를 발품을 팔아 모으기 시작하는데, 오래된 신문 스크랩에서 그 작품과 관련된 프랭크와일러 부인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된다. 클로디아는 미젤란젤로의 작품이라는 자신이 믿음이 어떻게든 확인되기를 원했고, 두 꼬마는 미술관을 나와 바질 부인(프랭크와일러) 의 대저택을 찾아간다.

위대한 학자이자 수집광인 프랭크와일러 부인은 처음에는 냉담하게 두 꼬마를 대하나, 두 꼬마의 반짝이는 눈과 꺾이지 않는 승부 근성에 마음을 열고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자신의 파일 박스에서 관련 서류를 찾아내면 그 진위를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부인의 멋진 제안에 이제 된 두 꼬마의 마음은 분주해졌다. 물론 몇 가지 단서만으로 엄청나게 많은 서류 박스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해당 파일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야무지고 현명한 클로디아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동원에 결국 찾아내고야 만다.

이제 바질 여사와 두 꼬마는 거래를 한다. 프랭크와일러 부인은 가출 이후의 모험담을 들려주는 조건을 내걸었고, 꼬마들은 자신들의 가출 이후의 사건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프랭크와일러 부인은 비밀을 갖는다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 박진감을 주고, 자신만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크로디아와의 비밀 약속을 통해 알려준다.

크로디아는 생각을 한다. "일단 비밀이 생기면, 내가 비밀이 있는 줄 아무도 모르는 것이 재미없지. 남들이 그 비밀이 뭔지 아는 것은 싫지만 내가 비밀을 갖고 있다는 것만을 알아야 해." 즉, 클로디아가 가출을 통해 진정으로 원한 것은 비밀이었다. 안전하면서도 사람을 다르게 만들어 주는 비밀, 자신에게만 의미를 갖는 비밀... 그래서 두 꼬마의 가출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신중하면서도 현명한 프랭크와일러 부인은 꼬마들의 할아버지가 41년이나 자신의 변호사로 일해 왔음을 알게 되었지만, 이 역시 아이들에게 절대 비밀에 부친다.

이 책은 성장을 위해 스스로의 울타리를 잠시 나온 용감한 여자 아이 클로디아의 모험담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클로디아와 함께 메트로폴리스 미술관에 잠입해 숨어있는 스릴을 만끽할 수 있었고, 이 당차고 야무진 아이들과 그들을 상대하는 재치 넘치는 프랭크와일러 부인의 행동을 통해 한편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코닉스버그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단 한 마디로 충고했다고 한다. "완성해라. 작가와 재능이 있는 사람의 차이는 끝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다. 작품에 대해 말만 하지 말고 완성해라." 정곡을 찌른 말에 마음이 뜨끔해진다. 아무리 다재다능한 코닉스버그지만, 완성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녀의 재능에 숨겨진 비밀을 궁금해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북데일리 김영욱 시민기자] sylplus@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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