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땅` 밟은 엄홍길-박무택 `위대한 감동`
`신의 땅` 밟은 엄홍길-박무택 `위대한 감동`
  • 북데일리
  • 승인 2005.08.12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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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놀이터` 칸첸중가산(Kangchenjunga Mt.). 해발 8603미터의 칸첸중가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신들의 소유지다.

단지 목숨을 담보로 초대받은 몇몇 사람만이 `산에 육신을 묻는다`는 `신과의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정상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도록 허가받는다.

2000년, 산사나이 박무택(36)과 엄홍길(45)은 사상 최대 적설량을 기록한 칸첸중가의 초대장을 받았다. 원정기간이 길어지며 원정대의 식량이 바닥나 누룽지로 생명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8500미터 지점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오를 수도 내려갈 수도 없는 `운명`과 맞닥뜨리고 만 두사람은 텐트와 슬리핑백 없이 8500미터의 절벽에 매달린 채 밤을 지새운다. 이른바 `죽음의 비부아크`.

두 사람은 깎아지른 빙설벽에서 생지옥을 체험한다. 영하 50도의 추위에 깜빡 졸다 눈을 뜨면 무릎 위엔 그새 눈이 수북히 쌓이고 발아래는 바닥이 안보이는 얼음 낭떠러지였다.

엄홍길은 그 생지옥에서 박무택을 부른다. 박무택은 그보다 3미터쯤 높은 절벽 위에 역시 엄홍길처럼 옹색하고 비참한 자세로 그 죽음의 밤을 버티고 있었다.

깜빡 잠이 든 그는 엄홍길이 그의 이름을 몇 번이고 목 놓아 부른 다음에야 가까스로 숨통을 열고 맥없이 대답한다.

“예, 형… 저 여기 있어요.”

엄홍길은 마치 혼잣말처럼 같은 주문을 되뇐다.

“인마, 졸면 안돼…. 졸면 죽는 거야…. 우린 살 수 있어…. 힘 내! 무택아! 무택아, 내 말 들리냐…? 너 인마 졸면 안돼…. 졸면 우리 다 같이 죽는 거야….”

위대한 자연의 평범한 진리. 오늘도 태양이 떠오른다. 엄홍길은 얼굴 위에 낀 살얼음이 아침 햇살에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자 박무택을 깨웠다.

“무택아, 자냐?”

박무택은 한참 후에야 꺼져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눈떴습니다.”

엄홍길이 일어설 때 몸에 낀 얼음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그는 얼어붙은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애써 힘찬 목소리로 물었다.

“어떠냐, 올라갈 수 있겠냐?”

박무택의 대답은 언제나 그렇듯이 짧고 분명했다.

“가야죠, 형님.”

칸첸중가의 정상에서 박무택과 엄홍길은 세상을 안았다. 그리고 박무택은 신과의 계약대로 산에 육신을 묻고 자유로운 영혼이 됐다.

지난달 7일 방송돼 10.5%의 시청률로 화제가 된 MBC 특집다큐 `아! 에베레스트`에 이어 방송에 소개되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책 `엄홍길의 약속, 한국 초모랑마 휴먼원정대`(심산 지음. 이레)가 최근 출간됐다.

생사의 고비를 함께했던 동료들의 죽음 이후, 오로지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목적으로 77일 동안 엄홍길 대장과 휴먼원정대가 해발 8750미터에서 악전고투를 벌이는 과정을 MBC 다큐멘터리팀 등의 도움을 받아 생생하게 기록했다.

책은 TV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고, 원정대를 이끈 엄홍길 대장의 심경을 생생하게 담았다.

`산에 육신을 묻은` 3명 중 백준호 부대장과 장민 대원의 시신은 찾지 못하고 박무택 대장의 시신만 발견했지만, 원정대는 산사나이들의 진정한 우정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책은 TV와 신문, 잡지 등에서 볼 수 없었던 휴먼원정대에 얽힌 감동적인 순간들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앞서 소개된 고 박무택과 엄홍길 대장이 `죽음의 비부아크`로 맺은 특별한 인연, 고 백준호와 고 박무택의 미망인이 띄우는 애끊는 사부곡, 엄홍길 대장을 죽을 고비에서 구해낸 고 박무택의 영혼, 시신 수습 후 고인들을 영원히 떠나보내며 마지막으로 남기는 대원들의 가슴시린 사연들을 한자리에 모았다.[북데일리 백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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