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인 ‘조제’의 알싸한 러브스토리
지체장애인 ‘조제’의 알싸한 러브스토리
  • 북데일리
  • 승인 2005.08.11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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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 3급 김모씨는 지난해 12월 두 곳의 결혼정보업체에 배우자를 소개받기 위해 가입을 하려했으나 해당 업체에서 ‘신체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가입원서도 내밀지 못하고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신체장애를 이유로 결혼정보회사의 회원 가입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장애인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7일 밝혔지만, 해당 결혼정보업체는 조건이 안 좋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가입제한을 두기 때문에 장애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차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들며 해명했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결혼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나서서 반대할 이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 짓는 선과 ‘사랑’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무형의 장벽들이 남아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결혼을 하면 어느 한 쪽이 밑지는 것처럼 바라보고, 이들은 부모의 반대에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고 호적신고도 하지 않은 채 ‘무덤’ 속에서 살아간다.

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2004. 작가정신)은 어느 날 ‘뇌성마비’ 환자가 되고만 지체장애인 소녀 ‘조제’가 불우한 대학생 ‘츠네오’를 만나 사랑하고, 그 사랑이 시들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다룬 아름답지만 쓸쓸한 러브스토리다.

특이한 제목의 ‘조제’는 여류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속에 주요하게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본명 야마무라 구미코는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조제라는 이름으로 불러지는 것을 좋아한다. 또 그런 행운을 가져다주거나 줄 것이라고 믿고 자신을 “조제”라고 부르지 않으면 절대로 응답하지 않는다. 바로, 조제는 걷지 못하는 구미코의 날개달린 페르소나다.

동물원에 가는 걸 좋아했던 조제는 말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호랑이를 보겠다고… 만일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평생 진짜 호랑이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조제가 좋아하는 ‘그 남자’는 츠네오였다. 츠네오를 만난 후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의 포효에 기절할 만큼 놀라 그의 옷자락을 잡는 조제의 모습은 사랑의 힘을 통해 ‘장애’의 벽을 뛰어넘으려는 조제의 의지다.

그리고 규슈해 끝자락, 다도해의 한 섬에 있는 지하 수족관을 찾아간 조제는 “해저에 있으면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마냥 시간이 흐를 것 같다”며 말한다. 그날 밤 눈을 뜨고는 방안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을 보며 조제는 자신도, 츠네오도 모두 ‘물고기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물고기는 조제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세상을 자유롭게 떠도는 물고기는 걷지 못하는 자신을 빗댄 상징이기도 하다. 츠네오를 만나기 전까지 조제는 늘 집에서 혼자 책을 읽고 요리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 간이 절묘하게 맞는 요리를 함께 먹고, 깨끗이 말린 하얀 옷을 입고, 일년에 한 번쯤 아껴 모은 돈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걸을 수 있는 츠네오가 걷지 못하는 조제를 언제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그가 곁에 있는 동안 조제는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에는 서로 부부라고 생각하지만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호적신고도 하지 않은 채 ‘무덤’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평온하게 녹아있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는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타나베 세이코가 쓴 단편소설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일본 영화잡지 ‘키네마준보’가 선정한 베스트 일본영화 4위를 차지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부천국제영화제 공식초청작으로 국내에서도 개봉돼 지금까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꾸준한 사랑을 받는 영화다.

(사진 =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책 표지, 포스터와 영화 장면) [북데일리 백민호 기자] mino100@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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