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튈지 모르는 소설을 읽는 재미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소설을 읽는 재미
  • 북데일리
  • 승인 2006.09.27 1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중그네>(은행나무. 2005)를 통해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사람들이 의외로 정신적인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리얼하고도 재미있게 보여준 작가 오쿠다 히데오. <남쪽으로 튀어>라는 새로운 장편 소설이 나왔다는 소식에 주저 없이 바로 구입을 했다.

역시 그는 이번에도 독자의 기대를 외면하지 않았다. <공중그네>에서 정신과 의사로 등장해 독자의 사랑을 받은 이라부가 마치 변신하여 <남쪽으로 튀어>(은행나무. 2006)의 주인공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로 등장한 것 같았다. 옛날 과격파 운동권이었다던 그는 이라부가 주었던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어린 시절 누구나 겪었을만한 공감 가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처음부터 독자를 확 사로잡는다. 마치 내가 초등학교 6학년짜리 주인공 ‘지로’로 돌아가 또 다른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드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 속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의 전개는 독자로 하여금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강한 중독을 일으키게 한다. 이 책 속에 흐르는 주제를 웃찾사의 행님뉴스에 나오는 길용이는 이렇게 외칠 것 같다. “인간이 인간다워야 인간이지!”

그밖에도 작가는 제도권 교육의 맹점, 시민운동의 허구성, 동물적인 욕망과 소비를 유도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무한 경쟁, 풍요 속의 빈곤과 같은 첨예한 사회문제들을 무리 없이 담아내고 있다.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미일관계의 알력까지 포함하여 이 책 한 권으로 독자들은 현대 일본사회의 문제점들을 마치 종합선물세트를 펼친 것처럼 두루두루 맛 볼 구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만큼 어려운 주제를 깃털처럼 가벼운 기분으로! 더구나 지금 우리사회의 문제점들이 미묘한 파장으로 반영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역자후기 중)

하나, 학교는 즐거운 놀이터였다.

초등학교 6년 동안 함께 지냈던 친구들은 지금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코흘리개로 입학식을 하던 날. 그 땐 손수건을 왼쪽 가슴 쪽에 달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흐르는 코를 닦으라고. 그런데 그 손수건을 이용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화장실 귀신 이야기로 가기를 주저했던 기억, 쉬는 시간마다 나가서 여러 가지 놀이로 땀에 흠뻑 젖었던 기억, 철봉을 하다가 떨어져 팔에 깁스를 하고 다녔던 기억, 좋아했던 여학생의 생일 초대를 받고 그 집 앞에서 부끄러워 벨을 누르지 못하고 주저했던 기억, 우표수집이 유행이었던 때라 새벽부터 우체국 앞에서 줄서서 구입했던 기억, 그리고 졸업장을 받고 교정을 나왔던 기억. 수없이 많은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 시절 학교는 나의 즐거운 놀이터였다.

지로에게 학교는 즐거운 놀이터였다.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체육을 잘하는지라 애들 앞에서 근사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며칠 전, 높이뛰기에서 1미터 40센티를 거뜬히 뛰어올랐을 때는 여자애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영웅이라도 된 듯 한 기분이었다. (1권 p.25)

둘, 자족을 모른 인간의 욕심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읽을 책이 많아도 갖고 싶은 책이 있으면 또 구입해 버리고 만다. 내가 그렇다. 이것뿐이랴.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이 충분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모으기 위해 건강도 헤쳐 가면서 일을 한다. 만족하는 선이 채워지면 또 욕심이 생겨 더 높은 선을 만든다. 미래가 두렵다는 이유로. 이런 불만족은 언제쯤 끝이 날까? 아마 죽을 때까지 멈춰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기준을 만들고 그것에 도전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자족할 줄 모르고 불만족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같이 보이는 분들이 오히려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된다. 반면에 나는 왜 이리도 꼭 지고 놓지 못할까? 그것을 놓으면 살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죽을 때도 ‘내 돈’하고 죽진 않을까? 욕심을 제어하는 것은 나눔의 즐거움을 알 때인 것 같다.

“인류의 불행은, 충분히 가졌음에도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어.” (p.78)

셋, 행복은 의외 곳에 있다?

점점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 같다. 행복하려고 함께한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는 이유로 갈라서게 되는 것이다. 행복하려고 맞벌이를 시작한 것인데 그것이 가정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자식에게 좋은 공부환경을 마련해 주려고 이사를 하기도 하고 돈을 마구 쏟아 붇기도 했는데 오히려 자식은 빗나간다면 얼마나 허무할 것인가?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 가만히 보면 마케팅 용어로 `Consumer Insight(실험실에서 소비자를 조사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생활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개념)가 부족한 데서 오는 것 같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서로 배려하고 믿어 줄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보면 우리의 시선은 상대에게 있지 않고 그것과 관계없는 돈, 명예, 지위, 학위 등에 가 있진 않은가? 그러면서 그것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착각하고 있진 않은가 말이다. 지로의 가족이 도쿄를 떠나 먼 남쪽 섬 이리오모테로 튀어 오면서 가족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그 해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자, 그럼 잘 있어. 전화 고맙다.”라면서 끊었다. 고맙다...... 평소에는 식구들과 상대도 안하던 누나가 그런 인사를 하다니 뜻밖이었다. (2권 p.151)

모모코가 오랜만에 오빠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로는 뿌듯했다. (2권 p158)

오랜만에 신나는 대화가 오갔고, 웃음소리가 터졌다. 역시 가족은 함께 있는 게 좋다. 모자랐던 퍼즐 한 조각을 한순간에 찾아 낸 듯한 느낌이었다. (2권 p.183)

누나와 어머니가 이불을 나란히 하고 자는 건 지로가 철든 뒤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2권 p.184)

어째서 아버지는 저런 모습이 그대로 멋진 그림이 되는 건가. 도쿄 시절의 게으름뱅이 아버지, 황당한 소리로 온 가족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지금 저 모습이 모조리 날라버렸다. (p.256)

나는 아라부에 이어 우에하라 이치로의 팬이 되었다. 현대 사회의 모순들을 가볍게 터치하면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이 책은 나의 소장서 리스트 순위에 쏙 올라왔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이 작가의 필력에 빠져보기 바란다.

[북데일리 백승협 시민기자] herius77@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