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광의 방]②40년간 7천권 `책사랑`...붕대로 감아 책 보관도
[독서광의 방]②40년간 7천권 `책사랑`...붕대로 감아 책 보관도
  • 북데일리
  • 승인 2006.09.2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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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광(讀書狂)의 사전적 의미는 ‘책에 미친 듯이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다.

미치지 않은 자에게 ‘광(狂)’이라는 수식어는 허락되지 않는다. 여기서 미친다는 것은 오직, 그것만 생각한다는 뜻을 포함한다. 독서광, 그 중에서도 수집본능이 강한 독서광은 갖고 싶은 책을 손에 넣기 전까지 그 책만 생각한다. 다른 책을 갖게 됐다하더라도 욕심냈던 책을 포기 하지는 않는다. 독서광은 포기를 모른다.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한 갈망처럼, 갖지 못한 책 리스트는 영원히 독서광을 따라다닌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책들은 독서광의 주머니를 가볍게 만들고, 주거 공간을 비좁게 만든다. 빌려 읽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독서광들은 끊임없이 책을 사들인다. 갖고 싶은 책, 추천받은 책을 소장하지 못했을 때의 헛헛함과 께름칙함. 그것은 늘 독서광을 분주하게 , 불안하게 만든다.

올해 나이 60. 책장 수 16개, 7천권의 책을 소유하고 있는 김용수(60, 서울시 성북구 동소문동 4가)씨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서광이다. 고교 지리 교사를 거쳐, 공기업에서 23년 근무 한 후 퇴직 해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김씨는 스스로를 “미쳤다”고 표현했다. 40년간 그가 미쳐 있는 것은 책과 음반 그리고 기록이다. ‘책에 미친 듯 책만 읽는 사람’이라는 독서광의 사전적 의미는 그에게 부족하다. 수십 년 간 해 온 신문 스크랩, 매일 같이 써 온 일기, 4천장에 달하는 음반은 ‘수집광’과 ‘기록광’이라는 수식어를 얹게 만든다.

취미는 책과 음악뿐이라는 김씨의 서재는 보는 이를 압도 했다. 고양이 도서관의 주인이자 일본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다치바나 다카시를 연상케 하는 여러 개의 책장에는 7천여 권의 책이 나란히 꽂혀있었다. 김씨의 집엔 방이 총 4개다. 이 중 서재로 쓰는 방은 작은방과 아들이 쓰고 있는 방 그리고 거실. 방 하나로는 감당 할 수 없는 분량이기에 2개의 방과 거실로 나눠 놓았다.

책 읽는 공간으로도 사용한다는 작은 방에는 앉을 자리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책이 넘쳐났다. 아들 방으로도 사용하는 서재 역시 더 이상의 책을 꽂을 공간은 없어 보였다. 그 중 백미는 거실 정중앙에 버티고 있는 대형책장. 엄청난 크기의 이 책장에는 장르별로 구분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빈틈없이 꽂혀있다. 대형책장도 소화해내지 못한 책은 거실 측면의 책장 2개에 나눠 담겨있다. 김씨는 방 2개와 서재를 점령하고 있는 16개의 책장을 오가며 종횡무진 책읽기를 즐긴다. 라벨하나 붙어 있지 않은 책장이지만 책 제목만 말하면 1분 안에 책을 찾아오는 놀라운 기억력은 그가 가진 많은 재능 중 ‘일부’일 뿐이었다.

“붕대로 책 감아 보관”

김씨의 책장은 두 개의 방, 거실 3면에 ‘분리’ 되어 있다. 그렇게 구석구석 놓인 책장의 수는 총 16개. 이에 꽂힌 권수는 대략 7천권이다. 주목 할 만 한 점은 모든 책이 ‘제자리’에 꽂혀 있다는 사실.

서적 분류는 다음과 같다.

▲작은방 1 - 역사, 교육, 고서

▲작은 방 2 - 대하소설, 실용서적, 회고록

▲거실 작은 벽면 - 음식문화, 건강, 음악, 예술, 여행기

▲거실 큰 벽면 - 일반문학, 기독교 서적, 은퇴, 노인, 죽음, 귀농, 문화와 풍습, 음악, 다도

대형서점 못지않은 다양한 장르의 책을 보유하고 있는 김씨. 그는 책 한권도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며 수십 년간 써온 책 관리 도구들을 꺼내놓았다. 헤지고, 갈라지고, 찢겨진 책을 전용 풀, 스티커 지우개, 때를 지울 수 있는 소독제, 테이프로 관리한다. 심지어 ‘붕대’를 이용해 책을 감싸 보관하기도 한다.

“어떻게 책을 함부로 다뤄요. 하나하나가 다 얼마나 소중한데...”

책을 자신의 몸보다 더 아끼는 김씨의 책은 어느 한 권 접힌 것이 없다. 이유는 책을 접지 않고 줄을 그으며 읽기 때문. 책을 관리하는 도구들이 있는 것처럼, 책을 읽을 때도 독서대, 색연필, 자를 반드시 지참한다. 좋아하는 부분, 기억에 남는 구절에는 줄을 그으며 읽기 때문에 빌리지 않고 사서 읽는다는 김씨의 책에는 반듯한 줄이 그어 있었다.

“흔들리게 그으면 다른 문장이 가려질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 책에 함부로 줄을 그어요. 빌려 읽으면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 계속 사는 거지”

특이 한 점은 볼펜이 아닌 색연필로 줄을 긋는 다는 것. 볼펜은 액이 흘러나올 수 있기 때문에 색연필만 사용한다. 직접 만든 책갈피를 갖고 다닌다는 김씨는 묵직한 가방 안에 담겨진 수 십 개의 책갈피를 보여주었다. 책 주인의 꼼꼼한 성격 탓에 7천여 권의 책들은 하나 같이 새것처럼 깨끗했다.

“책은 반드시 사서 읽어야”

좋아하는 책은 반드시 소장해야 직성이 풀리는 김씨는 온라인 서점이 아닌 오프라인 서점을 애용한다. 그가 주로 가는 서점은 동대문의 대원서적. 신간도 할인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주 이용한다. 김씨는 이 서점의 20년 째 단골이다. 헌책방도 자주 간다. 지금도 일주일에 2~3차례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책을 사 모은다.

“한 달이 뭐야. 일주일에 한번씩. 아니 사실은 거의 매일 가. 마누라한테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제 포기했다지만 이틀이 멀다하고 책 보따리를 싸들고 들어오는 남편을 향한 아내의 시선이 어찌 곱기만 할까. 잔소리가 싫어 책을 숨길 수 있는 가방을 들고 다닌다며 그는 커다란 가방 두 개를 보여주었다. 아내 몰래 끊임없이 책을 사 모으는 김씨는 “책만큼 싼 것이 없다”며 500원, 1천원에 산책들을 꺼내놓았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책을 안읽는지 모르겠어요. 세상에 책같이 싼 게 어디 있어. 신간 살 돈이 없으면 헌책방 가 봐. 운 좋으면 좋은 책도 5백 원에 살수 있다고. 술값은 잘 쓰면서. 담배 한 갑 살돈이면 헌 책 두세 권도 살 수 있는데. 책값이 비싸서 못 읽는다는 건 순전히 핑계야. 핑계”

책은 돈 주고 사서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씨는 사고 싶은 책 리스트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며 수십 년간 써온 ‘책장부’를 공개 했다. 산 책, 살 책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 장부에서 그의 못 말리는 책 욕심이 드러났다.

“수집광, 기록광”

지금도 매일 6개의 신문을 읽고, 스크랩한다는 김씨는 자신 스스로를 “미쳤다”고 표현했다.

“난 이런 거 못하면 미쳐요. 이거 할 때는 아무 생각도 안나. 오직 이것만 생각하는 거지.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가 지칭한 ‘이런 거’ 란 물론, 스크랩을 말한다. 얼마 전 아이를 낳은 딸을 위해 요즘은 ‘육아’ 분야의 정보를 더 많이 스크랩한다는 김씨의 스크랩북은 수십 권에 달했다. 반듯하게 잘린 하나하나의 스크랩에도 밑줄은 그어 있었다. 스크랩자료를 읽을 때 역시 자와 색연필을 이용한다.

“인터넷에 떠있는 자료는 검색을 해야 되고, 프린트도 해야 하잖아요. 근데 신문은 그냥 잘라서 붙이면 그게 자료에요. 그리고 신문은 하루가 지나도 그 신문만 보면 필요한 정보를 바로 찾을 수 있는데 인터넷은 하루만 지나면 그 자료를 찾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스크랩을 하는 거지요”

신문스크랩과 함께 거르지 않는 것 중의 하나는 일기쓰기. 거의 매일 쓰고 있는 일기장 역시 수북했다. 자신의 체중, 혈당, 아내의 혈당까지 기록하는 그는 ‘기록광’이었다. 수 십 년 간의 책읽기, 신문스크랩, 일기쓰기를 해온 그의 수면시간은 평균 4~5시간.

부지런히 책을 사 모으고 일기를 쓰고 신문을 읽고 스크랩북을 만드는 그의 하루는 24시간이 부족 할 정도로 바쁘다. 4~5시간의 수면시간은 이미 습관이 된지 오래. 책과 기록, 음악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의 원천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는 수많은 분야에 대한 관심 때문에라도 책읽기를 멈출 수 없다고 했다. 관심 가는 분야가 나타나면 그에 대한 모든 책을 섭렵해야 직성이 풀리는 김씨는 독서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다양한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고 살아가죠. 사람의 능력은 한정되어 있어서 누군가에게 직접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물잖아요. 그래서 책을 읽는 거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그들과 말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잖아요. 한 번 사는 인생, 할 수 있는 경험은 다 해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 새로운 경험을 책을 통해 할 수 있으니 읽는 거죠. 독서만큼 놀라운 경험은 없어요”

그는 책 안 읽는 사회를 개탄하며 독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공부만 강조하는 부모들 때문에 학생들이 점점 책을 안 읽게 되고 학창시절에 독서하는 습관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성인이 돼서도 책읽기에 취미를 못 붙인다는 것이다. 이사 할 때 가장 먼저 버리는 것이 책이라는 말은 책을 사유의 대상이 아닌 짐으로 느끼는 이들에게 던지는 따끔한 일침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은 덕에 이야기를 나눌 때 화제가 마르지 않는다는 김씨는 음악, 미술, 철학. 스포츠.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놀라운 식견을 보여줬다.

“호기심이 많아서 그래요. 궁금한 게 있으면 알아내야 속이 편하거든. 그걸 해결해 주는 게 책하고 신문이죠. 얼마나 좋은 자료에요. 그걸로 다 공부하는 거죠”

호기심이 많은 김씨는 책 커뮤니티 활동도 하고 있다.

프리챌 ‘숨어있는 책’(http://home.freechal.com/booklover/), 네이버 ‘책을 좋아하는 사람’(http://cafe.naver.com/bookishman.cafe)에서 ‘holysea’라는 아이디로 활동 중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을 즐기는 그는 북데일리 시민기자로 활약하며 토론회 ‘북토마토’에도 참가하고 있다.

“귀농을 준비 하는 노년의 삶”

그는 현재 귀농을 준비하고 있다. 방대한 분량의 책과 음반을 모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고 누구나 와서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만들고 싶기 때문에 그를 위한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김씨는 평생 일해 모은 돈을 집 지을 공간을 위해 모두 쏟아 부었다고 했다. 3년 안에 시골로 내려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 책 읽게 해주는 게 내 꿈이에요. 오가며 차 한 잔씩 하면서 편히 앉아 책 읽을 수 있는 그런 집을 만들꺼에요. 그리고 쓰레기가 안 나오는 삶을 살아 볼까해요.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귀농에 관한 책읽기를 마치고 꿈을 이룰 날 만을 고대하고 있는 그는 후손들, 자식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했다.

“금년이 60인데,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부모님이 80넘게 사셨으니까 나도 그때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70이 넘으면 이 책 다 못 볼 것 같아. 갖고 있으면 뭐 하겠어. 읽고 싶은 사람들 와서 마음껏 읽게 해주고 싶어. 그렇게 살다 가고 싶어”

여생을 생각하며 죽음에 관한 책을 읽었다는 김씨. 그에게 있어 책이란 삶이며 생명이다. 살아 있는 한 그는 계속 읽을 것이며, 모을 것이고 기록할 것이다.

“책은 계속 나오니까 사는 걸 멈출 수가 없어. 마누라가 버리라고 난린데... 나 죽거든 버리라고 그랬지...”

(사진 = 고아라 기자)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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