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패와 詩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다
화투패와 詩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다
  • 북데일리
  • 승인 2006.09.1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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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다빈치. 2006).

우선 책을 손 가는대로 마음대로 넘겨보자. (특히 71, 119, 275쪽) 눈에 아주 익숙한 그림이지 않은가? 정확히 딱 12달의 패는 아니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제법 비근한 화투 패를 손에 쥘 수 있다. 우선은 그렇다. 5-7-5 운율의 하이쿠의 매력을 찾아보기 이전에, 우키요에란 불렸던 에도 시대의 그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치 알고 있는 그림인 듯, 하지만 기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우리네 화투 패와는 사뭇 다른 묘한 일본적인 맛이 있는 우키요에를 보고 있으면, 이젠 그 옆에 붙어 있는 하이쿠가 눈에 딱 들어오기 마련이다.

하이쿠의 역사는 대략 60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도쿠카와 이예야스가 도요도미 히데요시를 패각시키고 1603년 에도(지금의 동경)에 서울을 옮기고 시작된 문화부흥기(나름대로 그렇게 불러도 될 듯), 지금의 도쿄가 개발이 된다. 문화의 중심지, 상업의 중심지로서 많은 길들이 닦이고, 그 길로 사통팔달 지방의 호족들과 자유로운 물물의 교환이 이루어지면서, 에도는 경제적 부흥과 함께 문화적 중흥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먹고 살만하면 예술의 거래도 이루어지는 법, 그렇게 태어난 것이 우키요에이다. 훗날 19세기 인상파 화가인 마네나 고흐 등에게도 영향을 주었다는 우키요에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이런 호기심으로 우키요에를 들여다보면, 더욱 재미있다. 유곽녀들의 모델이 되기도 하고, 당시 유행하는 그림책과 소설의 삽화로 주가를 한참 올렸다는 우키요에는 결국 삽화라는 보충적 성격을 벗어나 독립된 예술 회화 작품으로까지 격상하기에 이르니, 인쇄술의 발전과 함께 다색판화가 가능해진 에도 말기에는 다량의 생산까지 가능했다고 하니.... 과연 일본에 그림책이니, 만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을 알 만한 대목이다.

자, 이제는 하이쿠를 이야기해보자. 우키요에만 달랑 있으면, 심심하다. 풍류를 즐기는 동북 아시아권 사람들에게 시란 무엇인가? 중국의 이백이나 두보의 시가 노골적으로 애심을 노래하지 못했다면, 섬나라 사람들은 과연 어땠을까? 렌가(연시)의 쇠퇴와 더불어 쵸닌(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부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그들에게도 예술적 여흥을 즐길 여력이 생겼다.

그들은 서로 주고받는 렌가의 거추장스러움 보다는 5-7-5-7-7 운율의 하이카이를 즐기게 되지만, 하이카이 역시 서로 주고받아야 되는 점에서는 여전히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그래서 그것도 길다 여긴 쵸닌들은 렌가와 하이카이의 첫 구, 즉 훗쿠의 5-7-5만을 가지고 훌륭한 시창작 활동을 즐겼다. 바로 그 시가 이 책에서 말하는 에도시대의 걸작 하이쿠이다.

하이쿠는 계절을 상징하는 엄격성과 함께 짧은 시의 형태인 만큼 호흡을 중단해서 시의 짧은 맛의 민숭함에 덧 맛을 입혀줄 수 있도록, 기레지(절자)를 갖춘 시의 종류이다. 계어란 말 그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할 수 있는 식물, 동물, 연중행사, 날씨, 자연현상에 관련된 화두 같은 것들로서 쉽게 이야기하자면 화투의 패를 떠올려 보면서, 12개의 그림을 연상하면 딱이다.

사실 5-7-5의 짧은 운율 속에 한 사람의 온갖 감흥을 어찌 다 말할소냐만은, 간결하고 작은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그나마 그 것 속에서도 미학을 일구어낸다. 그 속에는 객관적 상관물에 씌워진 작가의 심상도 느껴진다니...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뭐든 그렇지만, 시어의 표면적 의미와 내포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던가? 마찬가지이다. 짧다고 우습게볼소냐? 큰 코 다친다. 하이쿠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전 세계적으로 팬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짧지만, 그만큼 함축적이면서도, 폭넓은 공감대를 느낄 이미지를 생산해내기 때문은 아닐까?

말이 길었다. 바쇼, 잇사 등의 유명 하이쿠 시인들이 아니더라도, 이 책은 우키요에와 하이쿠의 대위적 병치로,, 시감상의 맛을 더해주는 도판까지 훌륭하고, 여백의 미까지 넉넉히 갖춘 화집(아님 시집)이랄 수 있다.

[북데일리 김영욱 시민기자] sylpl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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