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가들만의 감정 `절판의 공포감`
애서가들만의 감정 `절판의 공포감`
  • 북데일리
  • 승인 2006.09.1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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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뜻밖의 서류봉투 하나가 내 손에 날아왔다. 그 속에는 인터넷 이웃 ‘고냥씨’의 흔적이 들어있다. 동글동글한 솜사탕 같은 손글씨와 함께 날아온 것은 절판된 책의 복사본.

한 동안 이 복사본은 내 책상위에 던져져 있었다. 나의 소홀함에 대한 대가였을까? 끊임없는 악몽과 몸살에 시달려야만 했고 새벽에 응급실까지 가야했던 절체절명의 위기를 경험해야만 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이 이야기는 <책>에 나오는 주인공 비블리가 겪은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책을 수집하는 애서광 비블리는 우연히 벼룩시장에서 <책(Dsa Buch)>을 발견한다. 이 <책>의 묘한 매력에 빠진 비블리는 몰래 슬쩍 훔쳐온다.

그리고 어느 날 비블리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어마어마한 희귀장서들을 처분해버린다. 그 <책> 한권만 남기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자신의 키와 몸무게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밤에 악몽까지 꾼다. 꿈에는 비블리가 가진 <책>이 서랍을 뛰쳐나와 손가락이 생기고 발가락이 생기고 머리까지 생겨 사람이 된다. 그러다가 며칠 뒤에는 꿈이 반대로 된다. 비블리의 몸이 손과 발이 점점 뭉뚝해지더니 자신이 책이 되어 서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비블리는 그렇게 책으로 실제 변신을 한다.

애서광이던 비블리는 이제 책이 되었다. 한권의 완전한 책이 된 것이다. 책이 된 비블리는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친다. 신경질적인 한 소녀와 도서관 사서, 그리고 출판업자와 작가, 제본업자와 서적수집자, 그렇게 그들의 손을 거치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비블리는 다시 벼룩시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 과정은 아주 절묘하게 그 상황과 <책>이 된 비블리의 의지가 결합된 산물이다. <책> 비블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은 즉각적인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즉, <책>은 우리 독자, 인간의 의지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다고 해야 할까?

바로 이 점이 내가 지금 내 앞의 책을 노려보고 있는 이유이다. 지금 내 앞의 이 책도 어느 인간이 책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나에게 왔다면...? 어쩌면 다음 책이 될 인간을 물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이 된 비블리의 최후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책>은 벼룩시장에서 또 다른 사람의 손에 쥐어져 그 곳을 떠났다. 이 말은 <책>의 여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말이지 않은가?

자, 다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라. 요즘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그리고 새로 헌책을 집어 들고 온 일이 있지 않은지...

ps. 이 책은 현재 절판이다. 헌책방을 겨우 뒤져야 한권 발견할 수 있는. 서점에서 이 책을 보게 될 날을 기다린다.

[북데일리 장하연 시민기자 xx2000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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