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애호가가 ‘차의 미학’에 반한 사연
커피 애호가가 ‘차의 미학’에 반한 사연
  • 북데일리
  • 승인 2006.09.1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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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피 애호가이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한잔씩, 머리가 무거울 때마다 또 한잔, 입이 심심하거나 목이 마를 때도 한잔씩 마시니까, 보통 하루에 5잔 이상씩은 마시는 것 같다. 좋아하는 커피는 일명 "다방 커피"라고 불리는 인스턴트커피. 특히 모카 맛을 좋아한다. 그리고 계피 향과 커피향이 그윽하게 어울려 깔끔한 맛을 내는 카푸치노도 좋아한다. 진한 향의 에스프레소나 크림이 동동 띄워져 있는 카페모카는 질색이다.

이렇게 커피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하지만, 차에 대해서는 그다지 할 이야기가 없다. 커피가 없을 때 커피 대용으로 마시는 티백이 동동 띄워진 녹차가 내가 유일하게 마시는 차다. 선물로 받은 영국산 다즐링 홍차를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처박아 둘 정도니, 더 이상 차에 대해서 할 얘기는 없는 듯 하다.

내게 친근한 친구 같은 커피와는 달리 차는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차를 마시는 데는 뭔가 예법이 따라야 할 것 같고, 뭔가 잘 갖추어 놓고 마셔야 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차와는 거리가 먼 사랑이라 하더라도 차는 느림의 미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여는 때 같으면, 인스턴트커피 한잔 마시듯 후루룩 읽어 버렸을 텐데, 어느새 보니 이 책은 차를 마시듯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일본은 `다도`라 하여 차 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차는 정해진 격식 없이, 그냥 소박하게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차 문화가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비교해 뒤떨어진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즐기는 것, 혼자 즐겨도 좋고, 둘이 즐기면 더 좋고, 셋이 함께 즐겨도 좋은 그런 것이다. 귀하고 오랜 벗이 찾아오면 정성스럽게 건넬 수 있는 것이며, 여행길에서 처음 만난 낯선 외국인에게도 스스럼없이 건넬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차를 즐긴다는 것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정신적인 여유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뜨거운 물을 부어 바로 마셔버리는 인스턴트커피와는 달리 차라는 것은 그 맛을 우려낼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하며, 차의 따뜻함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다기를 데우는 정성스러움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차를 마신다는 행위는 바쁜 일상에서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붙잡아두고 그 시간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친 계절도 느낄 수 있다.

세상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친구가 찾아올 때 차를 대접합니다.

사람들의 피부색이 다르듯 차의 색깔도 다릅니다.

사람들마다 체취가 다르듯 차의 향기도 다릅니다.

찻잔이 다르고, 차를 마시는 방법이 다릅니다.

차를 부르는 이름도 다릅니다.

차, 짜이, 티, 떼...

스페인 친구 가브리엘은 찻잎으로 만드는 차가 아닌 허브티나 과실차는

티가 아니라 인퓨씨오네라고 불러야 한다고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이름이야 어떻든 무슨 상관일까요.

그냥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끓여주는 뜨거운 음료는 다 차라고 불러도 될 겁니다.

- <와온 바다에서 茶를 마시다>(예문. 2006) 중

와온(臥溫) 바다는 곽재구 시인이 차 향기를 맡으며 글을 쓴 곳이다. "따뜻하게 누워 있는 바다"라는 이름처럼 와온 바다는 노을이 깔리는 개펄과 달빛들, 먼 섬 마을의 불빛들, 언덕 위의 작은 교회와 방파제, 맛조개를 캐는 아낙들, 그들이 함께 어울려 빚어내던 따뜻한 삶의 풍경이 있는 곳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한가롭게 차 한 잔 즐길 여유가 있는 곳, 바다를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따뜻한 차 한 잔 건넬 수 있는 곳이다.

이 책을 읽고 있다 보면, 나도 차를 한번 마셔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가 찾아오면 차 한 잔 우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친절하게도 이 책은 그런 생각을 바로 실천할 수 있게 도와준다. 부록으로 곁들여져 있는 <차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들>에는 차의 종류와 마시는 법, 보관법이 자세하게 나와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와온 바다처럼 따뜻한 풍경이 있는 곳이 아니라하더라도 잠시 손을 멈추고 시간을 느껴보고 싶다. 저랑 차 한 잔 하실래요?

[북데일리 이명희 시민기자] heeya1980s@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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