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애서광들`에게 던지는 경고?
무식한 `애서광들`에게 던지는 경고?
  • 북데일리
  • 승인 2006.08.2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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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책을 사서 모으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애서가, 독서가, 수서가, 장서가라고 한다. 그 정도가 심하면 책벌레(書蟲), 서치(書痴), 서광(書狂), 서음(書淫), 서선(書仙)이라고도 한다. 이들 수서가(蒐書家)들에게는 책을 사 모으는 일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 그들은 사랑하는 책을 위해서라면 더위와 추위 따위는 상관이 없다. 무언가 진귀한 책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천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 ─ <애서광 이야기> 작품해설 中

나도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책을 사서 모으는 사람들 중에 한명이다. 특히 ‘책에 대한 책’이라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사버린다. 만약 그것이 절판된 책이라면 오랫동안 찾는 이가 없을법한 작은 서점이나 헌책방까지 뒤져가며 기필코 찾아내고야 만다. 그래도 <애서광 이야기>(범우사. 2004)에 등장하는 세 주인공을 따라가기는 역부족이다.

<애서광 이야기>는 책에 미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지스몬의 유산>(옥타브 유잔느), <애서광 이야기>(구스타브 플로베르), <보이지 않는 수집품>(스테판 츠바이크) 세 가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지스몬의 유산>에서 애서가인 라울 규마르는 그의 경쟁자였던 시지스몬이 죽자 시지스몬의 장서를 소유하기 위해 시지스몬의 유산 상속녀에게 청혼을 한다. 시지스몬의 유산 상속녀는 49세의 규마르보다 9살이나 많은 58세의 노처녀로 엄청난 추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5년 동안 공을 들인 규마르는 결국 결혼에 골인하지만, 이미 좀벌레가 책들을 모두 파먹은 뒤였다.

<애서광 이야기>에 등장하는 헌책방 주인 갸코모는 세상에서 단 한 권밖에 없는 책을 경매에서 경쟁자에게 밀려 얻지 못하게 된다. 얼마 후 경쟁자의 집에서 불이 났고, 세상에서 단 한 권밖에 없는 책이 갸코모의 집에서 발견돼 갸코모는 방화범으로 몰리게 된다. 그의 변호사가 세상에서 단 한 권밖에 없는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갸코모는 혐의를 벗지만, 유일본이 아니라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죽음을 자초한다.

<보이지 않는 수집품>은 대형 고서화점 주인이 장님 수집가의 집에서 겪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책을 사랑하면서 읽고, 책을 귀여워하면서 읽고, 책과 친하게 지내면서 읽는다. 이것이 책에 대한 나의 태도다. 책은 내게 있어 둘도 없는 친구이며 선생이다. 또 둘도 없는 ‘마음의 위안’이며 ‘환희의 원천’이다. 책을 놓아두는 좁은 장소는 내게 있어 둘도 없는 안주지이며, 보잘것없는 나의 서재는 더할 나위없는 환락경이다. 책과 이야기하고 책에게 묻고 책과 논다. 나는 이보다 더 큰 기쁨이나 즐거움, 위안을 알지 못한다. ─ <애서광 이야기>, p66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읽지도 않으면서, 단순히 세상에서 하나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을 원했고, 경쟁자보다 더 많은 책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고, 정작 자신은 보지도 못하는 장님이면서 아름다운 책을 소유하길 원했다. 그들에게 딱 어울리는 책 한권이 있다. 바로 알폰스 쉬바이게르트의 <소설 책>(책. 1991)이다.

<소설 책>의 주인공 비블리는 벼룩시장에서 훔쳐온 한권의 책에 광적으로 매달리다가, 어느 날 책(Das Buch)으로 변신한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르가 그랬던 것처럼.

책(Das Buch)으로 변신한 비블리는 보통 책들이 그러하듯이, 그 역시 사람들에게 아무렇게나 다루어진다. 냄새나는 가방 안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불에 던져질 운명에 처하기도 하며, 어떤 장서가에 의해서 영원히 빛을 못 보게 될 위험과 부딪히기도 한다. "책을 공격하는 자는 책에 의해 망할 것이다"라는 성서의 말을 실천하듯, 비블리는 자신을 아무렇게 다루는 사람들을 강간하고 폭력으로 죽이기도 하면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간다. 다시 사람으로 변신한 비블리는 심장마비로 죽고 만다.

독자라면 또 때로는 특별한 책들을 사거나 훔치도록 유혹을 받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책과 부딪히게 돌 때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증상들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는 그 책을 끝까지 읽고, 믿지 않으면서도 그 책에 대한 모든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예고 없이 돌발적으로 도대체 더 이상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며, 어떤 의미를 가진 문장들을 읽기는 하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다만 희미해진 글자들만을 보게 되며, 활자들은 무한히 축소되다가 마침내는 없어져 버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책이 독자를 놓아 주는 것은 아니다. ─ <소설 책>, p126

인간으로부터 소외된 그레고르가 불안과 고독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다. 독자들로부터 읽혀지지 않고, 고이 ‘모셔져’ 있기만 하거나 혹은 그런 책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어딘가에 ‘처박혀’ 있게 된다면 책으로써의 반짝이는 빛은 잃게 될 것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소외된 책 또한 존재의 이유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책도, 독자도 반짝반짝 빛나는 빛을 잃지 않으려면, 비블리와 책(Das Buch)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가 되어야 한다.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진정한 이해에서 출발하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북데일리 이명희 시민기자] heeya1980s@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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