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교수 `내 생애 가장 소중한 것`
장영희 교수 `내 생애 가장 소중한 것`
  • 북데일리
  • 승인 2005.08.0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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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날지 못하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 나의 무지와 만용에 스스로 갈채를 보낸다. 못한다고 아예 시작도 안 하고, 잘 못한다고 중간에서 포기했다면 지금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장영희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 가운데)

7일 KBS 3라디오 `명사들의 책읽기`에는 번역가이며 수필가 겸 칼럼니스트인 서강대 영문학과 장영희(53) 교수가 출연해 자신의 근황과 함께 청취자들에게 한권의 책을 소개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장영희 교수는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를 못 쓰게 됐지만 고난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역경을 극복해 우리시대 존경받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영문 번역서와 수필집 발간 외에도 지난해 초까지 여러 일간지와 잡지에 칼럼을 연재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해오다 척추암을 선고받아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올해 초 항암치료 중에 강단에 복귀해 학생들에게 영문학을 가르치는 열정을 보였다.

이날 출연한 장교수는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선 백혈구를 늘려야 하기 때문에 살을 많이 쪄야 한다. 8kg이나 늘었다”며 “요즘 먹는 게 일과”라고 말을 건넸다. 이어 그는 “함암치료가 반 정도 끝났고 다음 학기에는 좀 더 과목수를 늘려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췄다.

장교수는 “(다른 사람에 비해) 기동력이 부족하니까. 책이 주변에 많았고 그래서 책을 좋아했고 많이 읽은 편”이라며 영문학을 전공하게 된 연유도 밝혔다.

“여섯 형제 중 네 형제가 다 영문학을 전공을 했다. 아버지가 영문학을 해서가 아니라 주변에 영문학 책이 많았고 달리 잘하는 게 없었다. 한번도 다른 과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고3이 되면 당연히 영문학과에 가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아버지 故 장왕록 박사의 추모 10주기를 기념해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2004. 샘터)을 펴낸 그는 아버지의 지도를 받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구둣방집 아들이 맨발벗고 다닌다’는 속담을 빗대면서 “아버지하면 아버님의 등이 떠오른다.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시거나 번역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고 회상하면서 “어릴 적부터 사람은 태어나면 당연히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사는 거구나, 라는 영향을 받으며 학문을 하고 강의를 하는 데 아버지의 영향을 자연스레 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방송에서 장교수는 “책 읽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인데 한 권만을 고르라고 하면 참 난감하다”며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을 청취자와 함께 읽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이 작품을 “어릴 적 그림책으로 읽은 뒤 미국 유학 시절 19세기 미문학을 전공하면서 진지한 태도로 다시 읽었다”며 “아동문학의 한 종류로 간주되고 있는 이 작품은 19세기 미문학의 가장 위대한 걸작품으로 문학사에서 굳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허클베리핀의 모험’은 ‘헉’이 주정뱅이 아버지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서 떠나는 감동적인 모험담을 담은 이야기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지혜를 발휘해 이겨나가는 헉의 여정을 통해 세상을 보다 넓고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아동도서로 알려진 이 소설은 1985년 미국에서 출간 당시 아동들이 읽지 못하도록 부모들이 꽁꽁 숨겨놓는 금서였다. 그 이유는 주인공 ‘헉’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아이가 아니라 혼자 살면서 옷도 엉터리로 입고 학교도 안다니면서 자유로운 삶을 향해 떠도는 인물이어서 당시 아이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부모들은 이런 삶을 아이들이 선택하지 않을까, 꺼려했기 때문.

반면 어네스티 헤밍웨이는 “모든 미국문학이 단 한권에서 나왔다. 바로, 그 책이 ‘허클베리핀의 모험’이다”라고 극찬했고 이 작품은 19세기 미국 문화의 최대 걸작 중 하나이며 미국 근대소설의 모태가 된 책으로 평가받는다.

장교수는 지난 2004년 9월까지 3년간 ‘조선일보’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펴낸 ‘문학의 숲을 거닐다’(2005. 샘터)에서 ‘허클베리핀의 모험’의 클라이맥스는 책의 후반부 헉이 노예 친구 ‘짐’을 구하러 가기 전 고뇌에 빠지는 장면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사기꾼들이 노예 ‘짐’을 몰래 팔아넘긴 것을 알고 헉이 짐을 구하러 갈 것인가 아니면 짐의 소재를 짐의 소유주에게 알릴 것인가 지독한 고뇌에 빠지는 데 있다”면서 “주위로부터 위선적이고 근본주의적 신앙을 강요받은 헉에게 짐을 구한다는 것은 아주 사악한 일이요, 문자 그대로 ‘지옥 불’에 빠질 일”이었지만 ‘차라리 내가 지옥에 가는 게 나아!’라고 말하며 짐을 구하러 나서는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았다.

이어 그는 “이 작품은 사회인습과 기성도덕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주제로 하지만, 이 소설의 진수는 짐에게서 참으로 소중한 ‘그 사람’을 발견한 헉의 도덕적 승리”라고 해석했다. 여기에서 ‘그 사람’은 진정한 친구를 의미하는 뜻으로 장교수는 함석헌 선생의 詩 ‘그 사람을 가졌는가’를 소개하면서 “높고 편한 자리보다 마음이 외로울 때 그래 ‘너 뿐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한 사람을 발견하는 게 진정 소중한 삶”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사진 = 다양한 ‘허클베리핀의 모험’ 책 표지, 지경사, 신원문화사, 미래사, 민음사. 문학의 숲을 거닐다, 샘터 제공) [북데일리 백민호 기자] mino100@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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