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시 시가 아닌 공정가치 반영돼야"
"두산 3사 이사회. 해당 안건 재논의 해야"
"대주주 의결권 제한으로 이해충돌 해소"
미국 펀드 관계자 "한국서 뼈저린 깨달음"
[화이트페이퍼=고수아 기자] 작년 연매출 10조 원, 영업이익 약 1조4000억 원대의 알짜 자회사 '두산밥캣'을 인적분할로 떼어 내, 2015년 설립 후 매년 적자를 내고 있는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하는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놓고 소액주주의 반발이 들끓는 가운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약탈적 자본거래'라며 시정을 촉구했다.
기업거버넌스포럼은 22일 서울 여의도 IFC에서 '두산그룹 케이스로 본 상장회사 분할 합병 제도의 문제점'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앞서 두산그룹은 지난 11일 두산밥캣의 지분 46%를 가진 두산에너빌리티를 인적분할한 뒤, 두산에너빌리티 분할 신설법인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포럼은 이 같은 두산 3사 분할 합병과 관련해 ▲근본적 문제로 두산로보틱스의 단기 급등을 틈탄 지배주주의 자본적 이익 추구 ▲두산밥캣 주주 관점에서 합병의 필요성도 없고 합병비율도 현저히 불공정한 점 ▲에너빌리티 주주관점에서 필요성도 없고 분할합병 비율도 현저히 불공한 점 ▲전체 거래 관점에서 (주)두산의 이익을 위해 계열사 및 주주들의 희생이 동반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주제발표에 나선 천준범 변호사는 두산 3사 지배구조 개편안을 지난 1997년 만들어진 자본시장법 시행령(176조의 5)을 "30년 묵은 고장난 자판기"에 비유했다. 또 그는 "자판기가 수리되기 전 최대한 음료를 공짜로 빼갈 수 있는 상황에서 법 시행령을 최악으로 이용한 사례"라고 말했다.
해당 시행령은 주권상장법인이 다른 법인과 합병하려는 경우에 기업가치 산정에 있어 각 호(최근 1개월간 평균종가, 최근 1주일간 평균종가, 최근일의 종가) 방법에 따라 산정한 합병가액을 '따라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공정가치가 아닌 시가로 기업가치를 평가하기 때문에 작년 연간 매출액 기준 183배 차이가 나는 두산밥캣·로보틱스의 합병비율이 약 1대 1로 도출됐다는 설명이다. 이번 자본거래 이후 지배구조 최상단의 두산의 두산밥캣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은 당초 14%에서 42%로 대폭 상승할 예정이다.
천 변호사는 "만약 로보틱스가 공모가(주당 2만6000원)로 평가됐으면 두산 지분율은 대략 18.7%밖에 안 된다"며 "자본거래에서 누군가가 이익을 봤다는 건 누군가는 손해를 봤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각 자회사의 이사회 결정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점도 비판했다. 그는 "합병은 회사 간 거래가 아니라, 주주 간 거래로 주주들 사이에 재산권이 이동하는 것"이라며 "이사회가 사업적 검토만이 아닌 주주를 위한 최선의 이익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이러한 극단적 불합리를 시정하기 위해 이사회에서 해당 안건을 다시 논의하는 것을 비롯해 금융감독원의 증권신고서 엄격 심사(정정요청), 주주총회에서 특별이해관계자(두산) 의결권 제한 등 3가지로 제시했다.
금감원에 제출하는 증권신고서에 대해서도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주주에게는 분할합병 및 주식교환으로 받게 될 로보틱스 주식의 초고평가 상태(PSR 100, PBR 12 등) 등이 가장 큰 핵심 위험요소인데 제대로 고지되지 않았다"며 "객관적인 정보를 포함한 핵심투자위험을 최상단에 배치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한 주총에서 특별이해관계인이 의결권을 스스로 행사하지 않는다면 이해충돌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날 간담회에는 두산밥캣 실제 주주로 자신을 소개한 외국인투자자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션 브라운 테톤캐피털 파트너스 이사는 "저희 펀드는 자산 규모가 약 12조 원 정도이고 1999년도에 설립돼 전세계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며 "지난 11일 기준 펀드는 5% 미만이지만 의미 있는 주식수를 보유하고 있는데 당일 오후 합병 공시자료를 보고 제 눈을 의심했다"고 말했다.
브라운 이사는 두산밥캣의 주요 경쟁사들인 쿠보타, 케터필러는 평균적으로 영업이익의 10.5배로 거래되는 점 등을 감안해 두산밥캣은 영업이익의 10배를 기준으로 적정시총은 15조 원으로 추산했다.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비교군인 파낙, ABB 등이 17%의 양호한 영업이익률에도 3~5배 정도로 거래되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적정시총이 영업이익의 5.6배 및 순현금을 합쳐 7000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했다.
그는 "밥캣, 로보틱스의 합병비율은 96대 4이지만 실제로는 49대 51이 나왔다"며 "사실상 휴지조각으로 절반 정도나 (지분가치가) 희석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브라운 이사는 지난 11일 두산그룹 계열사의 지배구조 개편안 발표 이후 격분한 나머지 밥캣 주식 대부분을 장내매도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두산이 실질 수혜자인 것 같다. 한 푼도 안내고 밥캣의 지분율을 14%에서 42%까지 끌어올린다. 소액주주 지분이 절반 정도 희석되는 대신 두산 절반 정도를 가지고 있는 재벌가에서 어마어마한 수혜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지난 12일 두산 계열사의 외국인투자자 컨퍼런스콜에서 적절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사회에서 왜 이런 결정을 하게됐는지 물었더니 그들은 그룹 시너지 때문이라고 답했다"며 "하지만 시너지 가치 추정치를 물어보니 이사회에서 그것을 예산이나 추산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더욱 난처했다"고 말했다.
브라운 이사는 "두산밥캣의 이사회 6명(대학교수 4명 CEO 1명 CFO 1명)인데 어마어마하고 현저한 가치평가 비대칭으로 인해 이사회는 충실의무, 선관의무 둘 다 충족하지 못 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미국에서는 전략적 대안이라고 다른 잠정적 인수자 가 있는지도 타진을 한다. 컨콜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고 말했다.
김광중 법무법인 클라스 한결 변호사는 "소액주주들 입장에서 상법 개정이 돼 있었다면(이사회가) 이런 결정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이 그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