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이름만 기억되는 `무궁화`
오직 한 이름만 기억되는 `무궁화`
  • 북데일리
  • 승인 2005.08.03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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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면서 고속도로는 도시를 떠나는 차들로 몸살을 앓는다.

심호흡을 하고 핸들을 꺾어 짜증나는 도로 위 `주차장`을 벗어나 조금 한산한 국도로 접어들면 길섶에서 환하게 웃는 무궁화를 발견하게 된다. 얼핏 접시꽃처럼 생긴 무궁화를 보면서 초등학교 시절 무궁화 동산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들에게 무궁화는 광복절, 육영수여사, 문세광, 긴급조치 등 주입되거나 강요된 이미지를 반복, 연상케 한다. 당시 무궁화는 꽃이라기보다는 태극기와 같이 가까이 하기 어려운 상징적인 존재였으리라.

“무궁화” 노래가사처럼 ‘피고지고 또 피는’ 그 사이에 수많은 목숨들이 상처와 좌절을 안고 삶의 뒤안으로 스러져 갔다. 그 후로 역사의 현장에 있던 어느 가수가 80년대에 ‘나의 뒤를 부탁’한다며 무궁화가 지는 것을 슬프게 노래했지만, 90년대를 거치면서 무궁화는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한때 근엄하여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무궁화를 우리 곁에 오롯이 들고 온 시인이 있다.

전라북도 김제에서 활발한 시작활동을 하고 있는 나혜경(41)의 시집 “무궁화, 너는 좋겠다”(2003. 문학과 경계사). 시인에게 그러나 무궁화는 역사적 상징과 상처의 존재가 아닌, ‘무관심으로 버려진 것’들을 꼼꼼히 챙겨서 새로운 ‘관계’를 열어가는 ‘불혹의 꽃’이다.

“나팔꽃이 피었어도 호박꽃이 피었어도/가영이는 무궁화가 피었다고 생각한다/꽃 이름이라곤 운동장 둘레의 무궁화밖에 모르니/불혹의 가영이에게 아무리 나팔꽃이라 말해도/또는 호박꽃이라 말해도, 미혹되지 않는/세상것 이름 변변히 외지 못하면서/무궁화만은 정확히 알고 있는/한 사람의, 오직 한 이름으로만 기억되는/무궁화, 너는 좋겠다” - 시 ‘무궁화, 너는 좋겠다’ -

무한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의 중력을 느끼지 못하거나, 누추한 일상속에서 반목과 배반을 밥 먹듯 하는 세상에서 시인은 가없는 사랑의 지평선을 보여준다. 이십여년 가까이 장애인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시인을 두고, 요즘 ‘목련꽃 브라자’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복효근 시인은 “나혜경의 시쓰기는 구도의 작업에 가깝다”고 말한다.

해마다 8월이 오면 무더운 여름 날씨만큼이나 남에서는 광복절 기념으로, 북에서는 조국해방 기념으로 뜨거워진다. 더구나 올해는 `광복`이든 `해방`이든 60주년이 되는 해로 무궁화 물결이 거리를 가득 메울 것으로 기대된다.

행여 무궁화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거나 시큰둥했다면, ‘오직 한 이름으로만 기억되는’ 무궁화를 휴갓길 꽉 막힌 차에서 내려, 아이들과 함께 한번쯤 유심히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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