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청계천, 50년전 서울의 매력에 빠지다
되살아난 청계천, 50년전 서울의 매력에 빠지다
  • 북데일리
  • 승인 2005.07.2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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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를 아무리 틀어도 열기가 식지 않는 열대야가 계속 되고 있다. 목욕탕을 들락날락 거리지만 물을 뿌릴 때만 시원할 뿐이다. 이럴 때는 느긋하게 `그려러니` 생각하는게 제격이다. 때론 먼 과거를 돌아보면서 추억에 잠기는 것도 피서방법 중 하나다.

아동문학가 어효선이 쓴 `내가 자란 서울`(2000. 대원사)은 50년전 서울을 담은 책이다.

전차, 개구리참외, 능금, 아이스께끼, 장작 장수, 아코디언 연주자, 양복에 버선 신은 노인 등 그 시절 풍경이 사진과 글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오십 년 전에는 집집마다 우물이 있고, 수도는 없어서, 동네 어귀에 놓은 공동 수도에 가서 물을 길어다 먹고, 물장수를 대어 받아 썼기 때문에, 수돗물이 귀해서 큰 빨래는 집에서 하지 못했다. (중략) 그런데 이상한 것은 빨래터 임자다. 얼만지 몰라도 사용료를 내야 했다. 고의 적삼 입은 수염 난 영감이, 우산 밑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지키고 있었다."

"그때는 거지가 많았다. 그래도 대문을 닫아 걸고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밥이나 반찬을 달래서 얻어먹고 사는 사람이 거지다. 아침 저녁 끼니때면 길에 거지가 널렸었다. …겨울에는 어디서 잤을까? 큰 건물 현관에 깐 돌바닥에서 잤단다. 돌은 여름에 햇볕에 달면 뜨겁지만, 겨울에는 얼음처럼 찰 텐데. 그러나 그렇지 않단다. 처음에는 차지만, 누워 있으면 사람의 체온으로 그 돌이 더워진단다."

50년 전의 풍경속에는 그 시절을 살았던 인물들이 함께 담겨 있다. 주먹대장 김두한과 자전거 등 서양 문화를 국내에 소개한 윤치호, 가수 김정구, 문인 최남선 등 저자가 보았거나 들었던 이야기속 인물들이 풍경과 함께 걸어나온다.

저자는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나서 어린시절을 줄곧 그곳에서 보냈다. 그런 만큼, 저자의 기억속에서 나오는 그 시절 거리 풍경은 무척이나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다.

종로 거리와 충무로 거리, 을지로 거리의 앞길과 뒷골목이 세밀하게 스케치되고, 그 골목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자세히 묘사된다. 게다가 글과 비슷한 양으로 실린 사진과 함께 글을 읽다 보면 단성사 앞을 흐르던 개천, 종로 3가에 있던 차부, 낙원동 골목안의 한성권번 등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청진동 골목을 나와서 광화문 쪽으로 가노라면, 지금의 교보빌딩 뒷길과, 건너편 광화문 우체국 옆길은 깊은 개천이었다. 교보빌딩 쪽은 살림집이라 집집마다 다리가 놓였고 사람 다니는 길은 오른쪽이었다. 광화문 우체국 옆 개천길은 왼쪽만 놓여있고 손수레 한대 지나가면 사람은 갈 수 없을 만큼 좁았다."

이 책은 저자의 추억을 담은 개인적인 글이지만, 용어 해설 부분은 무척이나 세밀하다. 가령 종로 4가에 있는 유기전 부분에 들어서면, 저자의 그릇 해설이 한 바닥 가까이 이어진다.

사기는 밥그릇, 국그릇은 사발, 놋으로 된 것은 주발, 식기 한 벌을 칠첩 반상이라고 하며, 밥그릇, 국그릇, 대접, 쟁반, 조치, 보시기 각 한 개씩과 종지 셋, 접시 일곱으로 한 벌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종로 3, 4가의 떡집 이야기가 나오면 떡에 대한 이야기, 현재 종로타워 부근의 `신전(신을 파는 가게)` 부분에 이르면 신의 종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내가 자란 서울`을 덮고 나면 가난했던 그 시절이 왠지 그리워질 것이다. 비만 오면 질퍽거렸던 진흙길과 초가집을 더 이상 볼 수 없고, 개구리참외를 먹을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저자가 풍경과 함께 묘사하는 `두터운 정`이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빨리빨리` 서두를 필요가 없었던 그 당시 자동차와 전차는 인력거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달렸고, 아이들이 `공부하라`는 말보다 더 자주 들었던 단어는 `놀아라`는 말이었다. 사탕 몇 개를 가져가는지 내다보지도 않는 구멍가게 할아버지와 내다보지 않아도 확인받고 가는 동네꼬마 이야기도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두부 장수가 재미있다. 물건을 팔거나 살 때, 그 자리에서 돈을 내고 받는 돈을 맞돈이라고 한다. 더러 맞돈을 받기도 하지만, 두부만은 거의 날마다 사게 되니까, 맞돈은 받지 않고 한 달 만에 몰아 받았다. 장부책을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이 글을 모르니까, 대문 기둥 옆 화방 쌓은 벽돌에다 몽당연필로 금을 그어 놓았다가, 한 달 만에 그 금의 수를 세어 보고 셈을 했다. 바를 정(正)자로 쓰는 이도 없었다. 그저 내리긋기만 했다. 짓궂은 아이들이 그걸 지워 버려도 더 긋지를 않았다. 사는 이나 파는 이나 서로 믿었던 것이다."

한편 저자 어효선은 1925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으며, 동요시집 `봄오는 소리` `고 조그만 꽃씨 속에`와 동화집 `인형의 눈물` `도깨비 할머니`, 수필집 `멋과 운치` 등을 쓴 아동문학가다. `소천아동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사진 = 1. 한강 얼음 자르는 모습. 2. 시냇가에 나가 빨래하는 아낙네들. 3. 서울 뚝섬 부근을 지나는 소달구지 행렬. 책 본문중)[북데일리 김대홍 기자] paranthin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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