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째 출근무산 강석훈 산은 회장, 노조 갈등 '장기화'
열흘째 출근무산 강석훈 산은 회장, 노조 갈등 '장기화'
  • 고수아 기자
  • 승인 2022.06.17 14: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근저지 노조, 회장·정부 입장 촉구 기자회견 열어
'국가균형발전' 명분 공공기관 이전 관련 거센 반발
(자료=산은)
산업은행 노조(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산업은행지부)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 로비에서 부산이전 추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산은 노조)

[화이트페이퍼=고수아 기자] "윤석열 정부의 산업은행 부산 이전 국정과제 이행 저지와 강석훈 산업은행 신임 회장 내정자의 부산 이전 임무 철회를 촉구하는 간단한 구호를 제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산업은행 지방이전 경제위기 초래한다.", "금융노조 총단결로 지방이전 막아내자." 

KDB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추진을 두고 깊은 갈등의 골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17일)로 취임 열흘째를 맞은 강석훈 신임 산업은행 회장은 산업은행 노동조합(노조)의 출근저지에 막혀 열흘째 본점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시절 지방균형발전을 취지로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노조는 산은 본점의 부산이전이 산은법 제4조 제1항에 명시된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에 위반되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밝힌 아시아 금융중심도시 육성 사업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하고 있다.  

■ 노조 이전 철회 강경입장 고수 "시장개입·반시장적 규제" 

금융노조 지방이전저지 투쟁위원회와 산은 노조(한국산업은행지부)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 로비에서 강 회장과 정부를 상대로 본점의 부산이전 강행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금융노조 위원장과 산은 노조위원장, 다른 국책은행 노조위원장들도 산은 부산이전 반대에 한 목소리를 내는 연대사를 했다. 

지난 8일 첫 출근이 무산된 강석훈 산은 회장은 전날 두 번째 본점 출근을 시도했지만 다시 불발됐다. 전날 강 회장은 노조 측에 "본점 이전과 관련해서 직원 여러분들과의 대화 채널을 항상 열어 놓을 것을 약속한다"며 노사 공동 상설기구를 만들어 논의하겠다고 밝혔고, 노조는 이를 원론적인 태도라고 지적했다. 갈등이 장기화할 태세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산은 본점 소재지는 법에 의해 서울특별시에 있다고 정하고 있다"며 "법을 바꾸지 않는 한 산은 본점은 서울특별시가 아닌 다른 곳에 둘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임 회장으로서 직원들의 입장, 산은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얘기해야 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노조 의견을 반영한 소통채널을 만들어서 상시적으로 소통하겠다는 것은 노조를 무시하고 대화하지 않으려는 사용자들이 흔히 하는 것"이라면서 "'산은 어차피 가게 돼 있다. 서울에 있는 모든 공공기관들은 지방으로 가게 돼 있다. 산은은 차라리 내려가는 것이 낫다'고 했던 얘기를 다시 제고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강석훈 내정자가 이 집회 장소를 피해서 설령 출근한다고 하더라도 3490명 어떤 임직원도 내정자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하루 빨리 깨닫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처음부터 잘못된 정책이라는 점을 이 정부와 대통령이 하루 빨리 인정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조윤승 산은 노조위원장은 "내정자는 첫 출근 시도 때 많은 언론과 직원들 앞에서 노조에 지방 이전 문제도 함께 논의하자며 대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실제 대화 과정에서 회장으로서의 책임의식, 구성원들의 정서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 채 대통령 공약사항이라는 정권의 입장에서만 현 상황을 판단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를 이전하면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철학을 말했다. 하지만 어제 강 회장은 '공간이 뭐가 중요하냐'고 말했다"며 "그렇다면 대통령의 철학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인프라가 있고 고객이 있고 가족이 있다. 이것을 단순히 일하는 사무공간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요한 수은 노조위원장은 "정치가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올바른 역할을 해야 하는 데 왜 오히려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과거 청와대 경제수석과 학생들에게 경제를 가르쳤던 사람이 국가경제를 위한 균형잡힌 사고를 하지 못하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산은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 신 정부는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민간시장 주도와 규제를 완화한다고 했다. 산은이 특정지역으로 이전 돼 그 지역의 발전만을 꾀하도록 하는 것이 신 정부가 추구하는 경제정책 방향과 맞는 것인지 묻는다"며 "산은의 강제지방 이전은 시장개입이자 반시장적 규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강석훈 회장은 대통령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 강 회장, 대외일정으로 첫 공식 행보... 갈등 타협점 찾을까 

강 신임 회장은 임명 후 아직 취임식도 갖지 못했다. 본점 출근이 무산된 이후 여의도 근처에서 임시 장소를 마련해 업무보고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대 총선 이후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2016∼2017년 경제수석을 역임했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엔 정책특보를 맡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함께 새 정부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참여한 인물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강 신임 회장이 현 정부의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서, 정치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산은의 부산이전 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적임자로 임명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본점 이전 시에는 인력 이탈, 정책금융기관 기능 및 효율성 저하 등이 있을 것이란 반론도 존재한다.  

전날 강 회장은 두번째 출근길에서는 직접 A4용지 한 장 분량의 입장문을 준비하고 ▲본점 이전과 관련해 대화 채널을 열어놓을 것 ▲직원들과 상설 대화 기구를 마련할 것 ▲산은 규제 완화 검토 ▲인력 및 예산 자율성 확보 노력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출근이 다시 무산됐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넥스트 라이즈 2022, 서울' 행사로 발길을 돌렸다. 취임 후 첫 공식일정을 대외행사를 통해 가진 것이다. 올해로 4회차를 맞은 이 행사는 산업은행과 한국무역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박람회다. 이 행사는 산은 회장이 매번 개회사를 맡아왔다.

강 회장은 개회사에서 "변화의 중심에는 늘 스타트업이 있고, 스타트업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대담한 도전이 지금도 세상을 바꾸고 있다"며 벤처·스타트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행사에는 국회 전반기 정무위원회장인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 당정 고위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지난 16일 글로벌 스타트업 박람회 '넥스트 라이즈 2022'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 하고 있다. (사진=산은)

금융권에서는 노사 입장이 극명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노조는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가 지금이라도 회장 내정자를 통한 산업은행 이전 압박을 멈추고, 이전에 대한 구체적인 실효성 검토를 선 시행한 후 이를 근거로 한 입법기관 국회의 판단을 존중하기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강 회장이 전날 공식 대외일정을 소화한 점과 노조 측에 "대화로 풀어나가겠다"고 재차 의지를 보인 점은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다. 한편으로는 산은이 '부산 이전' 외에도 정책금융역할 수행과 대우조선해양, KDB생명 등 각종 구조조정 관련 과제도 많아 회장 공백과 대치 국면 장기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산 유세에서 공약이 되고 공약이 국정과제로 채택돼 추진되고 있는 과정에서 다양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며 "산은 이전은 관련법 개정이 수반돼야 하는 부분이 있다. 갈등 장기화는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임 회장과 노조가 타협점을 잡게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