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증권 60돌…특유의 사업모델로 강한 금융그룹 탈바꿈
대신증권 60돌…특유의 사업모델로 강한 금융그룹 탈바꿈
  • 고수아 기자
  • 승인 2022.06.15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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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IMF 당시 5대 대형사 중 유일 생존
50년보다 컸던 최근 10년 통해 업계에서 가장 유니크한 사업모델
금융·부동산을 아우르는 밸류체인 구축해 새로운 고객가치 제공
(사진=대신증권)
(사진=대신증권)

[화이트페이퍼=고수아 기자] 대신증권이 60번째 생일을 맞는다. 부침 심했던 한국자본시장에서 60년을 생존했다.

특히 최근 10년간 대신증권은 업계에서 가장 유니크한 사업모델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과 부동산을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하고 새로운 고객가치를 제공하는 금융그룹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한 대신금융그룹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 IMF위기 5대 증권사 중 유일하게 생존  ​

대신증권은 오는 20일 창립 60주년을 맞아 ‘60년 사진전, 헌혈, 문화강연’ 등 직원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고 15일 밝혔다. 행사를 통해 회사가 걸어온 60년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대신증권의 창립 60주년은 부침이 유독 심했던 한국자본시장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탄탄한 리스크관리 시스템과 인적 노하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신증권은 1962년 삼락증권으로 출발했다. 1975년 故 양재봉 창업자가 인수해 대신증권으로 사명을 바꾼 후, 60년 동안 외환위기(IMF), 글로벌 금융위기 등 자본시장의 온갖 부침을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특히 외환위기(IMF) 때는 ​당시 5대 증권사였던 대신, 대우, 동서, 쌍용, LG 중 현재 회사가 없어지거나 경영권이 바뀌지 않은 곳은 대신증권이 유일하다. 국내 금융투자회사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글로벌IB들도 파산하거나 경영권이 바뀌는 일이 숱하게 벌어졌다.

IB명가·원조 HTS로 증권업계 주름잡다 

대신증권은 한국자본시장을 선도하며 성장했다. IB명가로서 이름을 떨쳤고, 주식중개시장에서 선두주자로 달려왔다. 증권업의 핵심 경쟁력인 인재와 시스템 측면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유했기 때문이었다.

1991년 업계최초로 인수합병(M&A) 주선업무 겸영인가를 얻어냈고, 90년대 수많은 인수 주선 딜을 성공시키며 ‘인수 대신’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기업을 공개하려면 대신증권으로 가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업공개(IPO)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IT부문의 활약은 더욱 대단했다. 대신증권은 IT불모지였던 증권업계에서 혁신을 이끌어 온 IT선구자였다. 대신증권이 IT부문에서 기록한 ‘업계 최초’의 기록은 무수히 많다. 

1976년 전산터미널을 도입하고, 1979년엔 객장에 전광시세판을 설치했다. 모두 업계 최초 전산화 시도였다. 1997년에 처음 선보인 대신증권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사이보스’는 대한민국 온라인 증권거래 혁명을 이끈 플랫폼으로 평가받고 있다.

1976년 대신증권 첫 본사인 명동 舊 국립극장. (사진=대신증권)
1976년 대신증권 첫 본사인 명동 舊 국립극장. (사진=대신증권)

이후 대신증권은 HTS 누적 사이버 거래액 1000조원을 최초로 돌파하는 등 온라인 증권거래 시장을 이끌었다. 대만의 대형증권사인 보래증권과 2004년에는 증권업계 최초로 자체개발 온라인주식거래 시스템을 수출했다. 이후 인도네시아 만디리증권, 태국 부알루앙증권에까지 온라인 플랫폼을 수출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2000년대에 들어서는 자본의 크기가 증권사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며 금융지주와 대기업 계열의 금융투자회사는 앞다퉈 자기자본 확충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형화 바람 속 대신이 택했던 '차별화'  

자본을 바탕으로 한 대형화 바람 속에 대신증권이 선택한 길은 차별화였다. 제한된 자기자본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섰다. 증권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금융기관을 인수하고, 새롭게 인가를 받아 신규비즈니스에 진출했다.

2011년 8월 중앙부산, 부산2, 도민저축은행의 자산을 자산·부채 인수(P&A) 방식으로 인수했다. 대신저축은행은 출범 10년 만에 총자산 기준 15위권 회사로 성장했다. 2014년에는 우리에프앤아이를 인수해 대신에프앤아이를 출범시켰다. 주력사업인 부실채권(NPL) 비즈니스는 물론 부동산 등 대체투자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2019년에는 대신자산신탁을 설립해 부동산 신탁업을 시작했다. 자산관리회사(AMC)인가를 받고 리츠 시장을 본격 공략했다.

대신증권은 이 같은 사업다각화를 통해 금융과 부동산을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대신증권은 기존 증권, 자산운용, 저축은행 등 금융 부문과 에프앤아이, 자산신탁 등 부동산 부문의 전문성을 결합해 새로운 고객가치를 만들어 냈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 가장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과거 ‘주식과 채권만 하는 회사’였다면, ‘주식과 채권도 하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본격적으로 금융그룹으로서 성장가​도를 걷기 시작했다. 최근 10년간 대신증권이 보유한 100% 자회사는 3배가 늘었다. 이들과 함께 지난 해에는 연결기준 영업이익 8855억원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 실적이다. 금융그룹으로서의 성장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안팎의 평가가 나온다.

■ 금융과 부동산 아우르는 밸류체인 구축 

대신증권은 WM 중심의 비즈니스로 전환과 함께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금융투자업계의 대형화 바람 속에서 대신증권은 사업다각화를 통해 혁신금융으로 재탄생했다. 대신증권은 과거 주식과 채권만 하는 회사였지만 주식과 채권도 하는 회사로 서서히 변해갔다. 금융과 부동산 계열사와의 연계영업을 통한 시너지 창출에 주력했다.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2011년 8월, 중앙부산, 부산2, 도민저축은행의 자산을 P&A(자산부채인수) 방식으로 인수했다. 저축은행 인수를 시작으로 에프앤아이, PE, 자산신탁 등을 잇달아 출범시키며 수익모델을 다변화했다. 저축은행은 출범 10년 만에 총자산 기준 15위권 회사로 성장했고, 에프앤아이는 주력인 부실채권투자를 넘어 부동산 등 대체투자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한남동 고급 아파트 ‘나인원 한남’ 개발사업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1985년 대신증권은 본사 사옥을 여의도로 이전했다. (사진=대신증권)
1985년 대신증권은 본사 사옥을 여의도로 이전했다. (사진=대신증권)

나인원한남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최고급주택단지다. 지드래곤, BTS 등 유명연예인과 기업인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 최고급 주택단지가 대신금융그룹에서 개발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 2016년 용산 외인아파트부지(니블로배럭스)를 6242억원에 낙찰받아, 최고급 주택단지로 개발해 지난해 분양을 마쳤다. 대신증권을 필두로 한 대신금융그룹의 부동산 경쟁력을 입증한 개발사업으로, 가장 최근에 공급된 대규모 최고급주택단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자산운용은 패시브 펀드와 부동산 등 대체투자 펀드에 집중해 역량을 키웠다. 수탁고가 지난 10년새 5배 증가했다. 2019년 7월 자산신탁은 부동산 신탁업을 개시했다. 2020년 2월 리츠 AMC 인가를 받고 리츠 시장을 본격 공략하며 전문성을 강화하는 등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올해 상장을 목표로 ‘대신 글로벌 코어 리츠’를 준비하고 있다.

명동시대 재개막…사옥명 'Daishin 343'에 담은 각오 

대신증권은 1976년 현 명동예술극장(구 국립극장)을 첫 사옥으로 가졌다. 1980년대 정부 자본시장 활성화 방침으로 여의도로 새로운 사옥을 지어 이전했고, 지난 2016년 말 32년 만에 명동으로 돌아왔다. 이후 1985년 여의도로 이전할 당시, 대신증권은 총자산 1239억원, 자기자본 299억원, 임직원 590명에 불과했다. 현재는 총자산 23조5050억원, 자기자본 2조6029억원, 그룹임직원 2000여명의 회사로 성장했다.

올해 60주년을 맞아 대신금융그룹은 명동 사옥명을 기존 ‘대신파이낸스센터’에서 ‘Daishin 343’으로 변경한다. 사옥 주소인 ‘중구 삼일대로 343’에서 착안했다. 주소는 세계 어디에서든 하나 뿐이라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닌다.

새로운 네이밍과 함께 대신금융그룹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업계에서 가장 유니크한(Unique)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듯이, 앞으로도 대신만이 갖고 있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찾아 나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투자회사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 업계 최초 문화재단 설립…활발한 사회공헌과 주주친화 

“기업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 사회 각 부문의 조화롭고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故 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자가 창업 직후부터 강조해 온 신념이다. 그는 1976년 장학회 설립 의사를 밝히며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위한 여러 방안을 고민했다. 송촌장학회로 시작한 대신증권의 사회공헌활동은 1990년 업계 최초로 설립한 대신송촌문화재단을 통해 지원 규모와 대상 등이 확대됐다.

올해로 31년을 맞는 대신송촌문화재단은 기본 재산 규모가 370억원에 이르는 대형 재단으로 성장했다. 우수한 인재 발굴과 육성을 위해 매년 장학생을 선발 지원하고 있다. 문화예술과 학술연구, 의료부문 등 다양한 분야에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지금까지 140억원 이상의 성금이 사회 곳곳으로 흘러갔다. 

한편 대신증권은 주주친화정책으로도 유명하다. 지속적인 자사주 매입과 현금배당을 통해 주주가치제고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대신증권의 배당정책은 안정적 배당투자를 원하는 주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IMF 이후 24년 연속 현금배당을 실시하고 있으며, 배당성향 측면에서 업계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증권업계를 대표하는 배당주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신증권 역사관이 위치한 서울 위례사옥 앞 황소상의 모습. 황소상은 주식시장의 강세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황소상을 만들었다. 전남대학교 미술대학장 김행신 교수의 작품으로, 역동적인 대신그룹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로 황소를 사들여, 그 행태를 연구하는 등 1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했다고 한다. 오랜기간 여의도 대신증권 사옥 앞을 지켜왔으며,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에 있는 황소상과 함께 여의도 3대 황소상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진=대신증권)
대신증권 역사관이 위치한 서울 위례사옥 앞 황소상의 모습. 황소상은 주식시장의 강세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황소상을 만들었다. 전남대학교 미술대학장 김행신 교수의 작품으로, 역동적인 대신그룹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실제로 황소를 사들여, 그 행태를 연구하는 등 1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완성했다고 한다. 오랜기간 여의도 대신증권 사옥 앞을 지켜왔으며,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에 있는 황소상과 함께 여의도 3대 황소상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진=대신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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