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달력 거지' 체험기..."따뜻한 은행 인심 느껴보세요"
은행 '달력 거지' 체험기..."따뜻한 은행 인심 느껴보세요"
  • 고수아 기자
  • 승인 2021.12.18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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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은 마음을 녹이는 친절함..."여전히 특별"
하지만 따뜻한 은행 인심은 '되팔기'로 속앓이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사진=화이트페이퍼)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사진=화이트페이퍼)

[화이트페이퍼=고수아 기자] "아, 탁상용 달력은 다 떨어졌어요...벽걸이용 뿐 안 남았는데 챙겨드릴까요?"

■ 여의도 지점들 "올해도 찾으시는 분 많아요"...전량 소진은 아직 

지난 16일 오후 1시 30분경 서울 여의도 신한은행 여의도기업금융센터에서는 신년 달력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대기 번호표도 뽑지 않고 창구로 곧바로 향해 대뜸 신년 달력을 받을 수 있느냐 뻔뻔하게 물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창구 직원은 친절한 응대(너무 오랜만에 은행 지점을 방문해 잠시 잊었다)와 함께 곧바로 큼지막한 벽걸이 달력 1개를 건넸다.

말로만 듣던 은행의 훈훈한 연말 달력 인심이 결코 옛말은 아닌 듯 했다. 덕분에 한층 더 뻔뻔하게 인근 KB국민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 하나은행, 산업은행까지 차례로 돌며 '달력 거지' 체험을 이어갈 수 있었다. 12월 셋째주가 끝나가는 상황인지라 대부분 은행들이 물량에 대한 여유는 많이 없어 보였다. 

이 중 KB국민은행 여의도영업부 지점과 우리은행 여의도금융센터는 탁상용·벽걸이 달력 모두 물량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였다. 이달 1일 배부를 시작했는데 첫주부터 찾는 고객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근처에 있는 KB국민은행 동여의도 지점의 경우 벽걸이 달력만 물량이 남아 있었다. 

NH농협은행 여의도 지점과 하나은행 여의도금융센터에서도 탁상 달력은 이미 동났고 벽걸이 달력만 약간 여유분이 있는 모습이었다. 

인근 KDB산업은행 여의도지점에서는 탁상형·벽걸이형 신년 달력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 물량 역시 곧 소진될 전망이다. 산은 여의도지점 한 직원은 "올해도 찾으시는 분이 많았다. 수치로 따지면 10% 정도 남아있다"고 말했다.  

여의도동새마을금고 지점은 달력이 전부 소진됐다가 최근 충당한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새마을금고 달력은 종이도 크고 숫자도 큰 '옛날 달력'이어서 중장년·고령층 선호도가 높다는 평판이 있다. 여의도동새마을금고 한 직원은 둥글게 말아진 달력 1개를 건네며 "하나 더 챙겨드릴까요?"라고 묻기도 했다. 

돌아다녀본 은행 지점에선 대부분 직원들이 올해도 달력을 찾는 고객들이 많다고 답했다. 벽걸이 달력보다 탁상 달력 수요가 훨씬 더 많다는 설명도 있었다. 이 중 한 지점에서는 "올해 할당받은 물량이 작년과 비교하면 30% 정도는 줄었다"고 귀띰했다. 

둘 다 없어서 못 구한 내년 달력은 우리은행 것이 유일했다. 우리은행 판교역·서현동지점도 가봤지만 남은 달력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은행 지점 한 직원은 "이달 초부터 드리기 시작했는데 탁상, 벽걸이 모두 금새 소진됐다"고 말했다. 

(사진=화이트페이퍼)
(사진=화이트페이퍼)

■ 무료 달력 가격 무려 왜 이럴까...비대면·ESG경영 속 일부는 작심 돈벌이       

은행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공짜로 달력을 나눠준다. 집에 은행 달력을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말도 여전히 속설로 통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 온라인 중고장터에서는 은행 달력 몸값이 제법 부풀어오른 현상도 목격되고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가 2019년 12월 기준 5대 은행 달력 거래량을 집계했을 당시 달력 시세는 VIP 고객 벽걸이용이 1만원, 일반 고객 벽걸이용이 5000원 수준이었다. 

이날 다른 중고거래 플랫폼인 번개장터 앱에서도 '(부자보장)2022년 XX은행 달력 팝니다' 등의 제목으로 내년 은행 달력을 판다는 다수 게시글을 찾을 수 있었다. 번개장터에서 '은행 달력'으로 최근 한 달치를 검색한 결과 게시글 수는 81개, 판매완료 거래는 27건으로 나타났다. 

같은날 중고나라에선 최근 16일간 판매완료를 포함해 400개가 넘는 2022년 '은행 달력' 매물이 등록돼 있었고, 달력 1개당 가격은 몇천원에서 몇만원, 비싸게 나온 매물은 10만원 이상 가격도 붙어있었다. 

이쯤되면 번개장터에서 2022년 하나은행 벽걸이 달력을 1만원(택배비 포함 1만4000원)에 팔겠다는 게시글이 양호하게 보이는 정도다. 마침 2022년 한국은행 탁상 달력 1개를 11만1111원에 판다는 글도 게시됐다. 

왼쪽부터 중고나라, 번개장터, 당근은행 2022년 은행 달력 거래 매물. (자료=각 앱 캡처)
왼쪽부터 중고나라, 번개장터, 당근은행 2022년 은행 달력 거래 현황. (자료=각 앱 캡처)

반대로 다른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선 '어머니가 매년 국민은행 달력을 원하시는데 구하기가 어렵네요'라는 내용으로 2022년 KB국민은행 달력을 8000원에 사고자 한다는 게시글도 보였다. 그나마 당근마켓이 2022년 은행 달력을 무료로 나눔하는 사례들이 가장 많아 보였다.

은행들은 매년 연말마다 신년 달력의 인기를 실감한다. 다만 제작량은 점점 줄여가려는 분위기다. 일정관리를 디지털로 해결하는 등 종이 달력 수요가 감소한 영향도 있지만 대세로 굳어진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방침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도 큰 배경이다. 

A 은행 관계자는 "예전에는 오시는 분들을 거의 드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수요도 줄었고 ESG경영 차원에서 제작도 줄여야 하고 쉽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A 은행의 경우 작년에 달력 제작량을 크게 줄인 반면 올해는 전년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품귀' 요인은 그럼에도 달력 품질에 대한 은행들 정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은행은 2022년 달력 콘셉트를 유명 화가들 작품을 똑같이 따라 그린 AI(인공지능)로 잡았다. 2022년 산업은행 달력은 작가 전영근 씨 작품들을 담고 있고 산은의 ESG경영방침에 맞춰 친환경 소재로 제작됐다. 

은행 관계자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달력을 찾는 고객들이 반갑고 감사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올해 역시 연말 훈훈한 인심이 일부 '달력 거지'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탈바꿈하는 현상이 계속되자 내심 속앓이도 하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신년 달력은 고객 분들이 받으면 좋아하시고 은행들도 대가를 바라고 드리는 게 아니다"며 "인터넷에서 시세가 형성돼 거래되는 게 법을 어기는 건 아니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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