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에 담은 천개의 아픔과 고독....박선희 '폐사지' 사진전
렌즈에 담은 천개의 아픔과 고독....박선희 '폐사지' 사진전
  • 임채연 기자
  • 승인 2021.09.27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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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작가의 폐사지 작품
박선희 작가의 폐사지 작품

[화이트페이퍼=임채연 기자] 박선희 작가 사진전이 내달 6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종로 '갤러리 화인'에서 열린다. 여주 고달사지를 비롯해 1백 곳의 ‘폐사지’를 찍은 총 21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박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버러진 절터를 1천일 간 다니며 돌, 흙, 잡초, 정적 그리고 아픔, 좌절, 먹먹함, 외로움을 흑백 사진에 담았다”고 밝혔다.

작가는 토탈 사진 서비스 'All That Photos'를 운영하고 있으며, 2017 PASA Festival Emotion Team 외 다수 그룹전에 참여한 바 있다.

<작품해설> 흑백의 폐사지를 통해 연민과 위로, 회복의 메시지 담아

작가의 심상이 투영된 흑백사진 속 피사체와 공간에 공감하는 감상자 개인들과 작가의 내면에 새 살을 돋우듯 새롭고 다채로운 감정의 색채와 형상이 채워지기를 희망한다.

흔적은 지나간 것을 상상하고 떠올리게 한다. 어딘가의 한 켠으로 쓰였을 다듬어진 돌, 세월에 부스러진 조각들, 페사지의 흔적만큼이나 무성한 잡초는 그 곳의 정적과 대조되어 살아있음을 드러내듯 서로 더 짙은 향을 바람에 실어내지만 그저 어우러지는 모습들일 뿐이다. 사람들의 발길과 간절한 기도가 가득했던 그 곳이 어느 시절 화려했고 고귀한 탑과 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무언가 사라진 이후로 새로 지어진 ‘페사지’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이 매 순간 정성스런 기도로 쌓아가는 사찰이고 탑이리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모습을 만나고 싶어 한다. 회피하고 외면하며 먼 길을 돌아도 살아있는 한 그림자처럼 함께하면서 결국 만나지는 것이 심상이다. 자기(self)와 만나지는 경험적 자아(ego)는 스스로 치유와 회복을 위한 심상의 상징적 매개를 찾아 표현하려한다. 작가는 흑백사진의 폐사지를 매개로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해왔을지.. 때로 나를 감싸 안는 것은 꼭 온기가 느껴지는 손길만은 아니다.

빛과 어둠의 폐사지는 살아있는 것들의 감정보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감정을 먼저 만나게 한다. 작가의 흑백사진은 페사지의 흩어진 피사체들을 남아있는 것에 대한 조명이 아닌 이미 지나가고 남겨진 흔적들임을 더욱 짐작케 한다. 그리고 작가의 지난 여정들의 심상기록으로 전달된다.

빛의 스펙트럼에서 지각되는 피사체 각각의 물체색으로부터 전달되는 감각적인 감정들을 배제한 흑백사진은 피사체와는 전혀 상관없이 시각적으로 전달된 이미지로부터 연상되어지는 기억의 방으로 찾아들어 내면의 색채들을 끄집어낸다. 줄곧 내면의 바다에서 물음표를 싣고 항해하던 미해결과제들에 답변을 기다리며 파도를 친다. 깎이고 부서진 차갑고 단단한 돌덩이에서, 뒹구러진 조각에서 자연의 시간과 순리로 자기를 실어본다.

그리고 각자의 지금ㅡ여기에 대해 심상을 내어놓는다. 대상을 바라보고 그 대상의 본질이나 특성과 상관없이 나의 상태로 투영한다. 천년 같았던 8년의 시간을 고통이라 말하는 하늘만이 이해하는 작가의 심상은 페사지에서 천 개의 아픔, 좌절, 먹먹함, 외로움의 이름으로 바람에 지나간다. 페사지를 찾아다니며 거울 같은 모습들에 본래 그 형상을 기억하는 잣대에서 작가가 겪어내어 온 삶의 감정과 감각들이 어렵게 눌러놓은 고통을 흔들고 연민과 위로와 미처 흘리지 못한 눈물을 허락한다.

이전에 지나왔을 시간들의 형상들과 현재 사이의 여운에서 만나지고 무언가 정돈되고 다듬어지지 않은 것 앞에 선 인상은 자기를 반영해 휩쓸리고 가슴을 쓰다듬는다. 현상에서 자각하는 삶의 실연은 비로소 나를 살게 하고픈 진정한 욕망의 진심을 만나러 다니는 여정일지 모른다. 바람에 흐르고 버틸만한 무게의 진심을 채워가는 것이리라.

빛과 어둠에 비춰지는 폐사지는 마무리 되어야 다음이 있음을 보여주는 끝과 시작이 동등하고 동일함을 일깨우는 생성의 이미지를 안겨준다. 폐사지의 모습은 내가 살아가지 않은 시대의 인류의 흔적이며 불씨와 같은, 마중물과 같은 그 흔적에서 살아가는 방법의 단서를 이어간다. 시작과 끝이 맞닿아 있는 것은 삶의 끝없는 이어짐이 아니라 순환하고 회전함을 전달한다. 삶에서 늘 마주하는 희노애락의 순환이다. 나이테와 같은 회전의 반복은 전체적인 삶의 여정에서 한 부분의 매듭과 시작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방향의 전환이며 누군가에게는 재탄생으로서 회복과 창조적 삶의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형체가 사라진 곳은 새로운 형태를 지어낼 수 있다. 버려진 곳과 남겨진 것은 이미 다듬어진 것과 다른 차원으로 가는 상상과 기대가 있다. 세상 무엇도 하나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고 무엇도 나눠지지 않았다. 모아진 삶이 형상을 만들고 또 허물고 다시 짓기를 수 반복하며 전쟁터 같고 흩어지고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살아왔고 살고싶고 살아남은 흔적들이다.

폐사지는 남겨진 흔적일 뿐 아니라 모든 것이 훑고 지나는 풍파에도 살아남은 강하고 단단한 흔적들이다. 또 실낱같이 가늘하게 연을 이어줄 작은 시작의 끈이다. 그것들은 곧 재탄생 할 새 생명의 퍼즐 조각의 시작이 될 것이다. 새로운 건축을 꿈꾸는 사람은 황무지의 토양과 주변의 조건을 바라본다. 스러진 돌, 흙, 잡초는 수천년의 그것이면서도 지금 여기 현재의 그것이다.

살아있는 자가 살아가는 것이 수천년 인류의 삶인 것처럼. 폐사지의 모습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면 삶의 가소성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쌓고 허물고 만들고 부수고 이루어내는 삶의 연속성이며 개인이 형성하는 마음과 삶의 구조이다. 모든 것에는 정해져 있는 것보다 창조하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일어서서 또, 다시, 길을 간다. 우리의 삶은 어느 형태로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다시 지어질 삶의 이름은 무엇인지

인체의 생리적 반응은 색채로부터 감정을 일으킨다. 피사체의 색채가 배제된 흑백사진은 색채가 조화로운 이미지에서 전달되는 감정들 이면에 자리하는 내면을 산책하고 심상의 근거를 찾아 스스로 회복하는 힘과 원동력을 발견하는 심상적 시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작가의 심상이 투영된 흑백사진 속 피사체와 공간에 공감하는 감상자 개인들과 작가의 내면에 새 살을 돋우듯 새롭고 다채로운 감정의 색채와 형상이 채워지기를 희망한다. <색채심리미술연구가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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