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얼어죽을 탁상공론] 국책은행 지방이전 “공생하려다 파멸한다”
[기자수첩:얼어죽을 탁상공론] 국책은행 지방이전 “공생하려다 파멸한다”
  • 장하은 기자
  • 승인 2020.08.27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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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장하은기자] [국책은행 이전의 검토대상이 되는 은행권과 받아들여야 하는 곳 대다수가 손사래를 치는 국책은행 지방이전, 누구를 또 무엇을 위해 펼치는 정책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다수의 전문가들은 그저 “탁상정치의 폐해”라고 답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에 공시된 지방은행들의 공시자료를 취합, 대출상품 수요 비중을 분석해본 결과 지방은행의 주 수입원은 개인보다는 기업이었다. 지방은행의 지난 5년간 대출수익구조를 보면 6개 지방은행 가운데 부산·대구·경남은행 세 곳은 기업대출 수익 비중은 가계대출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전북은행은 지난해부터 기업대출은 증가하는 반면 가계대출은 점차 감소추세가 뚜렷했고, 제주은행은 기업대출 비중이 가계대출의 1.5배를 차지했다. 광주은행은 비슷했지만 역시나 기업대출 수익 비중이 더 높았다.

이는 IBK기업은행의 대출수익구조와 비교 시 상당히 유사하다. 특히 대구은행의 경우 기업대출 수익이 가계대출 수익의 2.5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로 본점을 이동하자는 법안 발의가 통과, 현실화한다면 기업은행과 대구은행의 리테일경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점쳐진다. 채권발행을 통한 자체조달이 가능한 기업은행이 대구나 타 지역으로 옮기면 지방금융권의 ‘황소개구리’가 될 것이란 우려가 기우는 아닌 듯하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다른 국책은행보다 특히 기업은행이 지방으로 가면 ‘금리 후려치기’로 지방금융권을 장악하는 건 순식간이다”라고 확언했다.

‘금리 후려치기’란 더 싼 대출금리로 고객을 유인하는 것을 뜻한다. 차주는 처음엔 혜택을 보겠지만, 고객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지방은행은 고사하게 된다. 지방 기업의 '숟가락 갯수'까지 알면서 신용도를 평가해 대출을 진행하고 기업을 키워주는 지역 밀착형 금융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혜택을 보던 지방 기업들도 지역 밀착형 금융이 사라진 블랙홀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국책은행 지방이전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비단 지방은행의 리테일영업 악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지방은행에만 포커스를 맞췄을 때 예견되는 어쩌면 작은 부작용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국책은행 지방이전은 금융산업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뒷걸음치게 만든다는 데 있다. ‘금융허브’라는 용어는 ‘중심이 되는 어떤 곳에 모여 있어서 역할을 한다’라는 의미다. 금융이란 은행 창구거래가 아니라 수많은 투자로 발전하는 것이고 투자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성사되는 것이다. 국책은행 지방이전은 투자활동 둔화 및 핵심인력 탈출이라는 부작용을 낳아 금융산업 발전은 오히려 퇴보할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방으로 이전하면 차라리 본점에서 지점으로 인사이동 시켜달라는 직원들이 많을 것이다. 국책은행 지방이전은 건물만 뚝딱 옮긴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국책은행 지방이전은 투자활동의 취약 및 핵심인력 이탈 등의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금융기관이 흩어지면 비용만 증가하고 수익성은 악화하는 부작용을 발생시킨다”라며 “금융기관 분산으로 얻을 수 있는 국가균형발전이나 금융산업발전 효과는 거의 없고 오히려 성장력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IBK기업은행, 대구은행 기업대출·가계대출 추이비교. (지난 2016년 1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두 은행 모두 가계대출보다 기업대출 비중이 두 배 이상 높았다. (출처=금융통계정보시스템)
IBK기업은행, 대구은행 기업대출·가계대출 추이비교. (지난 2016년 1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두 은행 모두 가계대출보다 기업대출 비중이 두 배 이상 높았다. (출처=금융통계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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