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자전` 너무나 닮은 소설가 김훈 부자의 삶
`부전자전` 너무나 닮은 소설가 김훈 부자의 삶
  • 북데일리
  • 승인 2005.07.20 07: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훈(56)은 최근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다.

그는 탄핵정국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읽었다는 `칼의 노래`로 톡톡히 유명세를 치렀다. 그의 첫 장편이었던 그 소설로 동인문학상도 탔다. 그리고 처음으로 쓴 단편소설 `화장`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해 이 상 30년 역사상 첫 기록을 세웠다.

두 달쯤 전 엔 프랑스의 세계적 출판사 갈리마르의 세계문학선집에 한국 문학 최초로 `칼의 노래`가 포함됐다. 그리고 최근 진돗개의 눈으로 세상을 그린 `개`라는 소설을 발표했으니 당연히 소설가라는 직업이 그의 옷이리라.

하지만 소설가 이전의 직업은 기자였다. 한국일보에서 박래부 기자와 쓴 미문(美文)의 `문학기행`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해박한 문학 지식과 유려한 문체에 매혹 당한 당대의 인종들이다.

그리고 그가 거쳐간 50대 초반까지의 30여년의 삶은 두말할 것도 없이 기자의 길이었다. 시사저널의 편집국장과 국민일보 부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그리고 `백발의 현장기자`로 다시 필명을 날린 3매 분량의 `거리의 칼럼`을 기억할 것이다.

편집국장 출신의 한겨레신문 사회부 기동취재팀 평기자. 그는 흰머리에 모자를 쓰고 가방 하나 메고 종로경찰서를 출입했다. 그는 참여연대 등을 출입하며 언제나 밑바닥 현장에 선 기자이고 싶어했다.

그러하므로 김훈은 소설가이면서 기자다. 시절은 다를지언정 기자로부터 출발해 소설가로 이름을 떨친 것은 그의 부친인 김광주 (1910~1973)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과 흡사하다.

기자였던 소설가 김광주는 동아일보에 발표한 한국 무협소설의 대표작 `비호(飛虎)`(전6권. 생각의 나무. 2002)로 장안의 지가를 올리며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조병화 자전에세이 `떠난 사람 떠난 세월`(1996)엔 `김광주씨와 그 주변`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거기에는 김훈이 `밥벌이의 지겨움`을 말한 것과는 다른 뉘앙스지만 참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다 `비호` 연재 후 생활이 안정되어 갔다고 전한다.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이렇게 썼다.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모든 `먹는다`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밥의 질감은 운명과도 같은 정서를 형성한다...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 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대체 나는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조 시인의 책을 좀 더 인용해보자.

`명동의 술값, "반되만 더, 반되만 더"하던 그 많은 술값들이 거의 김광주씨의 이름으로 단 외상값들이었다.`

김광주의 연재물은 그가 신문사 문화부장과 편집국장을 거치면서도 항상 사글세, 아니면 전세방으로 이동하며 살았던 그의 가족에게 집 한 채를 선사했다. 그리고 변함없이 문인들의 외상 술값을 다 갚아주었다.

이후 연거푸 중국무협지를 출판하고 베스트 셀러를 기록했다. 김훈의 `칼의 노래`가 50만부 이상을 팔아치우고 이후 연거푸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것처럼.

그의 죽음을 애도한 조병화 시인이 쓴 조시(弔詩)에는 두 시구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밤의 대통령`, `강한 자아`. 밤의 대통령이라는 비유가 훗날 시가 실린 신문사의 사주를 가리키는 다른 의미로 쓰여진 것이 시사적이지만, 어찌 보면 김훈은 그 조시 안에 표현된 자신의 아버지처럼 일체의 세속에 타협이 없고 투철한 정신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영락없는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인 것이다.

그가 기자생활을 청산한 후 소설가로 유명세를 치를 무렵, 그의 영원한 첫 직장이었던 한국일보의 후배 기자들이 그를 불러 인터뷰를 했다. 기억에 남는 질문 하나.

-기자와 소설가 중에 어느 쪽이 좋은지.

“기자로 못한 원한을 지금 풀고 있는 거야. 기자 할 때는 6하 원칙에 맞게 써야 하는데 소설을 쓰니까 너무 편해. 근데 나는 사실 6하 원칙이 위대한, 최고의 문장이라고 생각해. 사실과 그것을 확인하는 것의 존엄함을 알아야 해. 지금 신문들을 보라고. 사실과 의견을 혼동

하고 있어. 보수신문이나 진보신문이나 똑같아. 의견을 사실인양 떠들고 있으니 미쳤지. 나는 두 발짝 세 발짝 물러났어. 너무 진이 빠져서.”

100가지 전망보다 한가지 확인된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 지상주의자`라고 명명해도 좋을 기자 김훈. 그는 사실과 의견을, 존재와 가치를 구별하는 것이 기자의 출발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것이 그가 일체의 세속과 타협하지 않는 원칙인지도 모른다.

`우주전쟁`이나 `스타워스` 같은 제 아무리 거대한 상상도 9.11테러나 런던 지하철역 폭발 같은 현실 앞에선 어쩔 수 없이 압도당하고 만다. 기이한 노릇이지만 상상마저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은 눈앞의 현실들이다. 모든 것은 현실로부터 출발하니까. 작가나 기자에게 유사한 것이 있다면 사실과 존재에 대한 물음이 될 것이다. 상상의 광대무변함을 관통하는 유일한 재료는 현실이니까.

거대담론이나 주장 같은 가치만이 아닌 현실에 대한 처절한 인식을 문장의 엄정성으로 묻고 있는 미문의 소설가 김현, 그의 몸에는 저널리스트요, 대작가였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천생의 유전자가 도도히 흐르고 있음에 틀림없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북데일리 박명훈기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