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이의 `어머니` & 김창완의 `어머니`
인순이의 `어머니` & 김창완의 `어머니`
  • 북데일리
  • 승인 2005.07.20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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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풀한 가창력으로 무대를 휘젓는 가수 인순이. 1978년 희자매로 데뷔한 그는 곧 30년 가수생활에 접어든다. 세월로 치면 ‘원로’ 가수인데, 변함없는 열창과 열정의 무대를 선보여 그를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기운이 나고 행복해진다. 그 인순이가 눈물을 흘렸다.

KBS 1TV ‘TV문화지대-낭독의 발견’은 명사들이 나와 가슴에 새겨둔 책의 한 대목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13일 낭독 손님으로 나온 인순이는 “침 넘어가는 소리도 내면 안 될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나도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고 시청자와 나누고 싶었다”며 출연 소감을 밝혔다.

이날 방송에서 인순이는 "지난 기억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이고 자신은 추억을 노래한다"며 오래되 빛바랜 사진첩 속의 추억을 하나씩 풀어냈다. 나고 자란 시골에서 새알 꺼내던 일, 깨 벗고 미역 감던 기억, 소풍가서는 개다리 춤이며 막춤을 추던 옛 일을 들려주며 동심으로 돌아갔다.

진행자 정지운 아나운서가 “무대의 화려한 모습에 비해 인순이라는 이름이 다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꺼냈다. 어질 인, 순할 순. ‘인순’은 어머니께서 본명으로 쓰려다 인순이에게 물려준 이름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붙여진 ‘에레나’로 불리는 것보다 어머니께서 주신 인순이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하고 사랑한다”며 “이모, 누나, 언니처럼 가까이 있고 된장 냄새도 나고 골 삭은 김치 냄새도 나는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방송은 자연스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런데 “어머니가…”라며 말을 꺼내자마자 인순이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몸이 약간 떨리는 가 싶더니 눈물을 쏟아냈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아야 했다.

한참 뜸을 들인 뒤, 그는 “우리 엄마는 나의 엄마고, 아빠고, 나의 친가고, 외가”라고 다부지게 말하며 “11명에 달하는 식솔을 부양하며 고생만 했던 엄마는 자신에게 강하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줬다”고 전했다. 현재 인순이의 어머니는 병환으로 몸져 누워있다.

‘어머니’라는 말만큼 심금을 울리고, 어머니의 품만큼 편안한 안식처가 어디 있겠는가.

‘어머니의 노래’(2003. 조선일보사)는 우리시대 명사 45명이 퍼 올린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며 우리시대 가족사의 한 편린이다. 신경숙, 최인호, 조수미, 정해종, 손숙, 이해인, 장영희, 구효서, 김영하 등 이름만 들어도 낯익은 각계각층의 명사들은 어머니가 기억하는 노래와 노래에 담긴 어머니의 추억, 그리고 부끄러운 가족사까지도 담담하게 들려준다.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 풋풋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가수 김창완도 어머니의 노래에 담긴 사연을 밝혔다. 그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인생과 함께한 노래를 캐묻는다. 그의 어머니가 20대를 기억하며 불렀다는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에 이어, 남편을 전장에 보내고 젖이 말라 죽은 아들을 가슴에 묻으며 떠올린 ‘님께서 가신 길’, 개성고녀 3회 동창들과 만나 불러재낀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까지 한 세월 함께한 애창곡을 늘어놓는다.

김창완은 글 말미에 “어머니의 노래는 거친 세상을 건너 강가에 묶여 있는 빈 배다. 그 배가 왜 거기 있는지, 이젠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래도 그 배는 우리의 어머니를 모진 세월을 거슬러 안전하게 모셔 온, 남루하지만 고마운 배다”라고 회상했다.

척추암으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강단에 복귀한 장영희 교수(서강대 영문학과)는 “이제껏 한번도 ‘어머니의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다”며 “이 세상이 노래 부르며 살 만큼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는 어머니 나름대로의 말없는 항변이었는지, 아니면 여섯 남매를 키우시면서 노래 부르기 위해 숨 고를 시간조차 없으셨는지, 어쨌든 어머니는 노래를 부르시지 않았다”고 고백하면서, ‘감격시대’를 들으면 어머니가 떠올렸던 ‘옆집 봉수’에 담긴 웃지못할 추억을 끄집어냈다.

“자식들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 남편에게 속상했던 이야기, 살면서 정말 울고 싶어질 때마다 엄마의 손을 잡아 준 건 우리가 아니라, 노래였음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는 한 독자의 말처럼, 책은 어머니가 기억하는 옛 노래와 우리시대 어머니의 초상을 구슬프게 들려준다.

세월이 흘러도 가슴 한 켠 커다란 구멍을 드리우는 말, 어머니. 언제나 그리움의 끝에 머물러 있는 어머니에게 청해 볼 일이다. 당신의 흘러간 옛 노래를 들려달라고. (사진=KBS, SBS, 조선일보사 제공) [북데일리 백민호 기자] mino1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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