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80세 할머니들의 슬프고 찬란한 인생 이야기
순천 80세 할머니들의 슬프고 찬란한 인생 이야기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9.03.27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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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권정자 , 김덕례, 김명남 외 지음 | 남해의봄날<br>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권정자 , 김덕례, 김명남 외 지음 | 남해의봄날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투박하더라도 진심이 담긴 글에는 힘이 있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여든을 앞에 두고서야 글과 그림을 배운 스무 명의 할머니들이 모여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봄날.2019)를 펴냈다. 순천 소녀시대다.

책에 따르면 난생처음 연필을 잡았을 때 손이 떨려 선긋기조차 힘들어했다. 하지만, 2~3년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다. 대중교통의 노선표를 읽어내고 자신의 이름을 쓰고 표현하게 됐다.

글과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한 안안심 할머니는 한때 자신의 별명이 ‘봉숭아꽃’이었다 말한다. 그만큼 어여쁘고 아름다웠던 한때를 그림으로 그려냈다. 할머니는 앞으로 소원이 건강하게 공부하는 것이라 밝혔다.

 

안안심 할머니 그림 (사진=남해의봄날)
안안심 할머니 그림 (사진=남해의봄날)

그런가 하면 먼저 떠난 배우자를 추억하는 라양임 할머니의 그림과 글은 사랑스러운 소녀 감성이 묻어난다. ‘뒤끝 없는 영감’이란 제목의 글과 그림의 멋들어진 양복 차림새의 남자는 아마도 소싯적 할머니 눈에 비친 할아버지였을 터다. 오뚝한 콧날, 잘 차려입은 차림새를 표현한 그림 솜씨가 남다르다.

 

라양임 할머니 그림 (사진=남해의봄날)
라양임 할머니 그림 (사진=남해의봄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책에 담긴 할머니들의 삶에서 우리의 근현대사를 마주친다. 한평생 글을 몰라 사는 내내 두렵고 버거웠던 이야기, 가난으로 배움을 넘볼 수도 없었던 사연뿐만 아니라 전쟁 중 피란길에 죽은 동생을 업고 걸었던 시린 기억, 일본군에게 잡혔다 돌아오지 못한 친구 이야기가 담겨서다.

하지만, 떠난 젊은 시절을 야속하게 그리워하기보다 늦깎이 학생으로 인생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할머니들의 기쁨도 함께 느껴진다. 실제 할머니들의 글과 그림은 지난해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으며 올해는 해외 전시 계획도 잡혀 있다.

인생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해안으로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슬프지만,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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