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모서리`에 기댄 시인, 침묵의 날갯짓
`황금빛 모서리`에 기댄 시인, 침묵의 날갯짓
  • 북데일리
  • 승인 2006.02.1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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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도 구름의 왕자와 같아서/폭풍우를 다스리고 사수를 비웃지만/야유 소리 들끓는 지상으로 추방되니/거대한 그 날개는/오히려 걷기에 거추장스러울 뿐.”(보들레르 ‘신천옹’중)

수천 년을 황도 12궁에서 양자리의 수호신으로 일하던 신천옹이 어느 날 궤도를 이탈하여 지상에 내려온 것도 어느덧 열 두어해 전 일이다. <황금빛 모서리>(문학과지성사. 1993)를 지닌 이 새는 황금모피를 찾는 이아손의 추적을 피해 십 수년째 모처에 은거중이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이탈한 자가 문득’)

별똥별의 찰나의 반짝임만 볼 수 있을 뿐 우리는 새의 형체를 볼 수 없었다. 땅속으로 숨었네, 다시 하늘로 돌아갔네, 말들이 많았지만 새는 갈대숲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깊은 뿌리는 못 내리외다. 우리 年代의 참극을 외면하러 땅의 맨 가장 자리로 도망쳐 왔으므로...... 물결이건 바람이건 툭툭 건드리고 지나가면 필요 이상 방관의 어깻짓을 하는 몸이므로./그러나...... 이몸은, 領地에서의 安住를 포기했을 뿐이라고 변명하외다 고로, 존재하외다 전율로서, 외곽에서.”(‘갈대2’)

태양이 다스리는 황도(黃道)를 벗어나 자유롭기는 하나 영외에서의 삶은 고단하다. 생의 철로 끝에서, 세상의 끝에서 날고 싶지만, 결국 그는 지상의 낯선 나그네새일 뿐이다.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큰 도로로 나가면 철로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기차가/있다 가끔씩 그 철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처연하게/걸어다니는데 철로의 양끝은 흙 속에 묻혀있다 길의 무덤을 나는 사랑한다....../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사랑한다...... 세상의 끝에 있는 집/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食堂에 딸린 房 한 칸’)

마음은 늘 바다를 향해 있으나 사소한 일에 상처만 받고 사는 무기력한 망명지에 새는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별들의 음계에 그의 귀가 솔깃해지기 시작한다.

“젖소들이 엉덩이를 어깨걸고 밥을 먹는다/또 한 별은 뭇별이고/나는 뭇별의 합창 소리에 풍덩 뛰어든다/음계의 아슬아슬한 표면장력/외롭다 어느 날부터/사람을 벗어나면 외롭지 않다.”(‘어느 날부터’)

지붕 아래 돼지처럼 살아가는 것이 집(家)이라면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다. 옷장 속에 감춰두었던 날개를 여민 새는 중력을 찢고 다시 날 준비를 한다.

“소가 길들여진 건 그게 편했기 때문일 거다/지붕 아래서 태어난 것들/인간의 배에서 나온 金氏도/울밑의 돼지 집짐승이다/....../출생의 후유증으로/꿈의 망명객일지언정 현실의 개도 아니던 詩人이/그게 죄가 되어 젊은 날을 路宿하다가/풀죽어 돌아오는 날/깃털 달린 공룡의 화석이 발견되기도 한다”(‘家’)

황도에서 이탈했다 하여 비참의 방죽에서 피를 토했던 새가 태양의 중심을 몸을 솟구치자, 피안을 향한 새의 부리가 황금빛으로 황홀하게 날아오른다.

“뼛속을 긁어낸 의지의 代價로/석양 무렵 황금빛 모서리를 갖는 새는/몸을 쳐서 솟구칠 때마다/금부스러기를 지상에 떨어뜨린다//날개가 가자는 대로 먼 곳까지 갔다가/석양의 黑點에서 클로즈업으로 날아온 새가/기진맥진/빈 몸의 무게조차 가누지 못해도//아직 떠나지 않은 새의/彼岸을 노려보는 눈에는/발 밑의 벌레를 놓치는 遠視의 배고픔쯤/헛것이 보여도/현란한 飛翔만 보인다.”(‘황금빛 모서리’)

유성처럼 지상에 한 획을 그으면서 지상에 왔다가, 태양에 흑점 하나 달랑 찍어놓고 사라진 새의 행방이 궁금하다.

어떤 이는 너무 일찍 철학을 알아 철학을 떠났던 비트켄슈타인에 빗대 살아있는 요절시인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황홀한 비상이 죄가 되어 어느 집 담장 모서리에서 누군가의 등을 긁어주며 살고 있을 것”이라는 풍문의 시인 김중식. 행여 금부스러기가 지상에 떨어지면 그의 비상이 다시 시작되었다고 보면 되는 것인가......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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