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포토] 에드가 드가가 그린 발레리나와 성범죄 현장?
[북포토] 에드가 드가가 그린 발레리나와 성범죄 현장?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9.01.10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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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드가의 <실내(강간)> (1868~1869)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한 여자가 의자에 기대어 울고 있다. 그 뒷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는 한 남자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문가에 기대섰다. 방안에 널브러진 옷가지. 그러고 보니 여인의 옷매무새도 흐트러져 있다. 무슨 상황인가.

화가 이름과 그림 제목을 보면 당황스럽다. 에드가 드가의 <실내(강간)> (1868~1869)이다. 드가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예술을 사랑하고 ‘발레리나의 화가’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로 유명하다. 드가가 성범죄 현장을 도대체 왜 그렸단 말인가. <방구석 미술관>(블랙피쉬.2018)의 저자는 당시 파리 사회와 드가의 삶을 조망하며 드가가 이런 그림을 남기게 된 배경을 추측한다.

책에 따르면 당시 발레리나는 빈민가 소녀들의 몫이었다. 춤을 위해 매일 수 시간 훈련하며 불구가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극한의 직업이지만 소녀들이 버틴 이유는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화려한 성공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성공한 발레리나는 당시 교사의 연봉에 무려 8배에 달하는 금액을 받았다. 하지만 무대 위 화려한 아름다움 뒤에는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삶이 자리했다. 당시 한 발레리나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오페라에 들어오고 나면 창녀로서 운명이 결정된다. 그곳에서 고급 창녀로 길러지는 것이다.”

본래 발레는 상류층이 즐기는 문화생활로 관객 대부분이 부유한 귀족이나 자본가였다. 그들은 쾌락의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공연이 끝나면 무대 뒤로 찾아가 어린 발레리나를 유혹했다. 스폰서(sponsor)란 개념도 이때 생겼다.

저자는 드가가 부유한 귀족 집안의 자제로 태어났지만, 방탕한 나날을 보내던 부르주아 사내들과는 다른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독신남으로 발레리나 소녀들에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그들의 고된 삶을 이해하며 그 시대의 보통 여인들을 그렸다. 소녀들도 그의 마음을 느끼고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전하며 앞선 작품도 여성의 슬픔과 아픔을 표현한 거라 말한다.

이어 <실내(강간)>이라는 작품명도 드가가 아닌 작품을 본 다른 남성들이 지었으며 드가는 그저 ‘풍속화’라 불렀다고 덧붙였다. 당시 파리의 풍속을 지탄하는 드가의 인간적인 마음이 느껴지는 내용이다.

<방구석 미술관>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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