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서생` 뺨친 금서, 장터서 팔았다?
`음란서생` 뺨친 금서, 장터서 팔았다?
  • 북데일리
  • 승인 2006.02.0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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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음란서생’(감독 김대우)은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 자제이면서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날리던 윤서(한석규)라는 인물이 음란한 책을 펴내 벌어지는 이야기다. 가문의 숙적 광헌(이범수)의 그림과 함께 만난 윤서의 글은 책으로 엮여 장안의 화제가 되지만 문제작이라는 이유로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된다. 왕의 총애를 받는 여인 정빈(김민정)에게 쥐어진 책 때문에 윤서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음란서적이 조선시대 금기도서 중 하나였다면 르네상스 시대 금기도서는 단연 종교서적이었다. 사상통제가 점점 엄격해지자 드러내 팔지 못하는 구어번역판 성서나 종교 소책자들은 책을 만든 6부류의 상인 중 ‘행상인’들에 의해 비밀리에 판매, 배포됐다.

‘문제적 책’이 오갔던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옹의 비밀을 밝혀낸 <책의 도시 리옹>(한길사. 2004)은 미야시타 시로 일본 도쿄대 언어정보학과 교수가 쓴 책의 역사로, 르네상스 시대의 출판계 이면을 흥미롭게 담아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당시 출판계가 피라미드 구조를 루고 있었다는 것과 상행위가 ‘장터’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책에 따르면 책 분야에 종사했던 이들은 대형서적상, 중견서적상, 인쇄서적상, 서적소매상, 대리상인, 행상인 여섯부류였다.

대형서적상은 리옹출판계의 권력자로 군림했던 부류. 책 외에도 향신료와 섬유제품도 취급했던 자본가들이었다. 출판을 수지맞는 사업이라 생각하고 자본을 투자한 장사꾼들이었다. 대형서적상은 인쇄소를 소유하지 않고 특정 공방과 계약해 생산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쇄용지를 공급했는데 값비싼 활자의 모형이나 삽화용 목판 같은 것을 구입해 인쇄공방에 빌려주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큰 이윤을 남긴 상인들은 이탈리아, 에스파냐 등 각국에 지점, 창고, 대리인을 두고 상품을 수출입했다. 대형서적 상인들은 출판계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다른 업자들을 종속시킨 권력자들이었다.

중견서적상은 대형서적상 만큼의 자본력은 없지만 경제활동은 거의 비슷했던 부류다. 인쇄를 하청 주는 경우가 많았고 국내에 지점, 창고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대형 서적상의 종업원 출신들도 많았다. 이들은 물물교환방식을 이용했는데 자기 출판 분야 뿐 아니라 지역 동업자의 간행본과 섞어 멀리 있는 서적상에게 발송하고 그에 준하는 책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곤 했다.

인쇄서적상은 후일, 중견서적상인이 된 이들이 많았고, 서적 소매상은 책의 생산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고 위탁판매만 하는 시내의 책방이었다. 저자는 당시의 책들은 출판사의 점두나 창고에서 판매됐으므로 소개서점이 있다 해도 극히 소수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대리상인은 도서목록 같은 것을 들고 큰 장이 서는 도시를 순회하며 서적상의 위탁을 받아 주문을 처리, 결재하고 수수료를 취했다. 우체부처럼 출판업자나 문학가들의 편지와 소포까지 취급한 이들은 개혁파의 책도 팔았다.

행상인은 대서특필할만한 존재들로 자질구레한 잡화나 벽에 붙이는 성화, 달력, 철자 연습장 같은 것들을 고리짝에 채워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팔았다. 책에 따르면 이들이 종교개혁과 사상보급에 기여한 역할은 매우 크다. 비밀리에 종교서적들을 옮겨 다녔기 때문이다.

파리와 다른 리옹은 상업지구 한 가운데서 당시의 문제작들을 주로 펴냈다. 리옹에서 발행된 르네상스시대의 걸작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도 외설스럽고 반종교적이라는 이유로 저자인 라블레가 신학자들로부터 고발을 당하고, 당국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르네상스와 운명을 같이 했던 리옹의 출판 역사를 담아낸 저자 로 “서툴지만 프랑스 르네상스에 관한 한권의 책을 완성할 수 있어서 감개무량하다”는 벅찬 집필소감을 밝혔다.

(사진 = 프랑스 리옹시 전경) [북데일리 고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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