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은 소녀들
예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은 소녀들
  • 북데일리
  • 승인 2006.01.3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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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소녀`는 `나쁜 소녀`가 아니며 오히려 둘 사이에는 8,000미터급 고봉의 크레바스 같은 간극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책이 있다.

한국에서 나온 김현진의 <불량소녀 백서>(한겨레신문사. 2005)가 그렇고, 일본 작가 다이도 다마키의 소설 <불량소녀>(황금가지. 2005)가 그렇다.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나`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나`

`불량소녀 백서`는 소녀들이 선택할 삶은 한없이 청순한, 모든 남자의 이상형인 현모양처와 섹시한 매력으로 어떤 남자든 거세시키는 `팜므파탈`일 뿐이라고 당돌하게 선언한다.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있는 `예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은` 소녀들은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그녀들에게 남은 건 불량소녀의 길이다.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나`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나`가 되고 싶다면 당신이 바로 불량소녀인 것.

그렇다면 `불량소녀`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불량소녀는 `진열장에 놓인 상품`처럼 자신들을 생각하는 여성들이 아니다. 상품들은 선택받기 위해 자신들끼리 경쟁을 해야 하는 운명을 갖고 있는 존재다. 한마디로 상품으로 여성과 여성이 경쟁하는 것이 아닌 자신과 경쟁하라는 것.

그녀가 명명한 `나쁜 년`은 여성들을 욕먹게 하는, 여성들의 자매애를 손상시키는 `절대악`적인 존재다. 가령 불량소녀가 `군대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나쁜 년은 `남들 다 가는 군대 가지고 별스럽게 군다`고 말한다.

또 `나쁜 년`은 `여자는 여자의 적이다`라는 사회의 오해를 공고히 만드는 존재다. 그래서 `나쁜 년`은 불량소녀들이 절대 따라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라는 주장이 억지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재치있고 장난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강한 어필이 느껴진다. 너무나 당당하고 신명나게, 제멋대로지만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여성의 길을 말하고 있다.

`오히려 한술 더 떠서 `원래 착한 사람인데 욱하는 기질이 있어서`하며 자신의 눈탱이를 밤탱이로 만든 그 악한을 옹호하는 착한 소녀들도 있다. 주위 사람들 여럿 복장 터지게 하는 케이스다. 정말 착한 사람은, 욱해도 때리지 않는다.` (`이런 남자와 절대로 연애하지 마라` 중에서)

`내 `삽질`을 끌어모아 내가 쓴다`는 이 당돌한 이 `20대 중반의 소녀` 김현진(24)씨는 고등학교를 때려치웠으며, 게으름 때문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6년째 다니고 있다. 일찍이 <네 멋대로 해라>(한겨레신문사. 1999)로 일약 인기작가 반열에 오른 바 있다.

열 아홉 살 호스티스, 텅빈 공백 같은 청춘 `불량소녀`는 2000년 아쿠다가와상 후보작이다. 무명이었던 이 작가는 3년 후 <이렇게 째째한 로맨스>(황금가지. 2005)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다가와상을 거머쥔다.

`불량소녀`의 주인공은 열아홉살 호스티스다. 이모 소개로 사촌 언니와 술집에서 호스티스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주인공은 몸을 더듬는 늙은 손님을 개의치 않는다. 그녀는 집에서 독립했다. 돈도 능력도 특별한 꿈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친구도 남자도 곁에 없지만 우울해 하지 않는다. 텅 빈 공백 같은 청춘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일류나 성공 강박증을 벗어버리고 유유히 현실을 살아가는 울타리 밖의 `새로운 청춘` 유형이다.

"이렇게 되뇌고 있지만, 사실 내 꿈은 고등학교 때의 일기장 속에 완전히 묻혀 버렸다. 현실의 나하고 180도 다르기 때문에 꿈을 꿀 수 있었다. 특별히 얼굴에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용에 신경을 쓰는 것도 아니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현실의 얼굴은 퉁퉁 부어 있을 뿐이었다. 그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지닌 수수께끼 중 하나도 전혀 분수를 모른다는 것이다. 눈이 삐었다고나 할까, 현실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p.40)

그러니까 주인공은 현실 속의 불량소녀가 아니다. 나쁜 년도 더욱 아니다. 사회가 만든 불량소녀의 이미지를 거부도 긍정도 하지 않는 진짜 불량소녀인 셈. 주위 시선도 아랑곳않고 `내가 되고 싶은 나`로 살아가는 소녀다.

"그렇다. 진짜 불량소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나는 그 무렵에 아무런 불량스러운 짓도 하지 않았다. 사실 불량소녀임을 자처하는 아이들은 공갈과 협박, 시너 도둑질, 불순한 이성교제 같은 일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더구나 나는 그런 불량한 행동은 고등학생이 아닌 중학생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같잖은 생각도 갖고 있었기에 굳이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p.35)

`불량소녀`의 연작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렇게 째째한 로맨스`에서 보여준 여주인공 또한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텅 빈 공백 같은 소녀에 머물러 있다. 서른이 넘은 노처녀, 그녀가 아내는 바람을 피우고,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발기불능의 노인의 품에 안긴다. 모습은 다르지만 불량소녀과(科)다.

그런데 `이렇게 째째한 로맨스`에는 주인공 동창생이자 오빠의 아내가 된 지난날의 진짜 불량소녀(?)가 등장 묘한 대조를 보여주며 흥미를 끈다.

`송곳니는 학창 시절에 불량소녀들의 우두머리인 여자 짱이자 폭주족의 마스코트 걸이었다. 오빠는 그 폭주족의 일원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송곳니는 자기보다 위라고 생각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불량소녀백서`와 소설 `불량소녀`의 주인공은 결코 같은 종족이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들이 한 종족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들이 결코 `나쁜 년`들이 아니라는 사실도 말이다.

(사진 = 박찬욱 감독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불량소녀로 분장한 이영애.)[북데일리 박명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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