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했던 얼굴` 신은경, 화장품 모델된 사연
`평범했던 얼굴` 신은경, 화장품 모델된 사연
  • 북데일리
  • 승인 2005.07.1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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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모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화장품 광고`의 철칙이던 시절, `평범한 얼굴`에 `찌푸린 표정`의 모델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일이 있다.

94년 신은경이 등장한 아모레의 `레쎄` 광고. 당시 MBC 화제의 미니시리즈 `마지막 승부`에서 보인 선머슴 이미지가 이른바 `신세대` 혹은 `X세대` 컨셉과 맞아 떨어져 화장품 모델로 캐스팅되는 행운을 얻었던 것.

모델은 왈가닥에 중성적인 매력을 풍기며, 화장품은 컬러풀하고 과감한 색조와 독특한 포장으로 신세대의 기호에 맞췄던 까닭에 당시 CF는 화제를 불렀다.

세계적인 광고계의 거장 번벅의 `모든 크리에이티브의 규율은 부숴버리라`는 말은 `신은경의 광고`를 단적으로 가리킨다. 이렇듯 한국 화장품 광고의 발전사를 보면 한국 문화변천사를 볼 수 있다.

<광고로 보는 한국화장의 문화사>(2002. 김영사)는 화장품에 전혀 관심없는 사람일지라도 흥미를 가질 만한 독특한 문화읽기용 책이다. 1920년대부터 오늘까지 여자·화장·광고에 담긴 문화와 비즈니스의 역사라는 부제는 이 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2천편이 넘는 인쇄광고와 5백여편의 전파광고를 다룬 `광고로 보는 한국화장의 문화사`는 2부로 구성돼 있다. 192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화장품 광고의 변천사를 다룬 1부와 화장품회사 태평양의 캠페인 성공사례를 다룬 2부로 나눠진다. 1부는 화장사이자 여성문화사, 광고사로서 미의 문화사이며, 2부는 광고인들이나 광고에 관심있는 이들을 위한 실무적인 자료들이다.

해방 전에 손수레를 끌고 시골 동리를 돌아다니며 화장품 따위를 팔던 행상인이 작은북을 치고 노래하며 선전했는데, 그 북소리가 `동동` 또는 `둥둥`이라 한 데서 나온 `동동 구리무(구리무는 크림의 일본말)`에서부터 책은 시작한다.

화장품 광고의 역사를 다루지만,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풍부한 해설은 이 책의 큰 강점이다. 일제의 아시아 전쟁, 군사독재, 청년문화의 발달, 여성의 광범위한 사회진출, 88올림픽이라는 세계적 이벤트들이 화장품 광고에 미친 효과 등이 흥미롭게 서술된다.

1941년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물자부족이 심해질 때 화장품 광고에도 전쟁의 그림자는 드리워졌다.

`언제나 명랑하고 씩씩하게 일합시다. 결전 하 근로 여성의 건강미에는 반드시 영양 크림으로. 멸사봉공 승리할 때까지는 각 직장에서 일체 멸사봉공하여 복구(원수를 갚음)증산에 힘씁시다. 정신감투(挺身敢鬪) 담당한 직장을 끝까지 생산사명을 완수!`. (매일신보 화장품 광고 카피)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안보의식 강화를 위해 신문광고에 `아빠는 안보역군 엄마는 방첩주부` `부정외래품 몰아내어 명랑사회 이룩하자` 따위의 슬로건이 들어갔다.

1959년 ABC 파라솔 크림 광고에는 왼팔을 굽혀 허리에 짚고 있는 반나체 여성이 나타나 변화된 사회상을 보여줬고,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가던 1980년 화장품 이름도 `에버그린`과 같이 색상, 이미지 등 모든 면에서 `그린(Green)`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TV광고에서는 여성이 행글라이더, 사이클, 말타기, 조깅, 드라이브, 수영과 보트타기 등 스포츠 장면이 두드러졌다. 여성의 활동이 증가된 사회 현실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개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자기 표현이 뚜렷한 10대 문화가 형성될 무렵, X세대를 겨냥한 `트윈엑스`가 등장했다. 화장품 광고의 역사를 보면 기업들이 동시대인의 감성과 생각을 마케팅과 절묘하게 결합시키기도 하며 의도적으로 감성을 만들어나가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남성화장품과 `터프가이`를 연결짓다가 어느 순간 여성이 등장하는 감성광고로 바뀐다. 남성화장품을 여성이 구입한다는 결과가 조사되면서부터다. X세대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높아지고 관련 제품이 매출하락으로 이어지던 당시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를 돕는 X세대의 모습과 수익금 아프리카 보내기 운동으로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킨 이야기도 나온다.

`저질 제품은 광고할수록 빨리 망한다`, `카피는 얼마나 짧게 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짧게 압축하느냐가 열쇠다`와 같은 광고계 불문율도 음미해 볼 만하다.

전문가가 쓴 특수한 분야의 책이지만 어렵게 읽히지 않는 것은 저자의 쉬운 설명과 함께 풍부한 사례와 사진들 덕분이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풍부한 광고사진과 당시의 사회 문화 통계자료들은 책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1976년 10대 광고주, 1970년대 정기간행물 추세, 흑백 TV 보급 추세, 1971년 신문사별 광고요금표, 여성인구의 변화, 흑백에서 칼라TV로 넘어가던 시절 광고계의 혼란 등이 화장품 이야기를 뒷받침한다.

황신혜, 이미숙, 금보라 등 옛 스타들의 앳된(?) 사진들을 실컷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저자인 신인섭은 평양사범, 평양교원대학 국문과 출신으로 현대경제일보, LG그룹을 거쳐, 현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서울카피라이터즈클럽(SOC) 창립회장, 아시아광고대회 사무총장, 한국ABC협회 전문, IAA세계광고대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국제광고·PR론` `광고실무론` `광고학 입문` `중국의 광고` `일본의 광고` `한국광고사` 등이 있다. <사진=신은경 화장품 광고><사진=김장철을 카피로 내건 태평양 화장품 광고><사진=당시로선 파격적인 비키니 광고. 1974년 광고이며, 모델은 주미><사진=이미숙이 모델로 등장한 1981년 부로아레몬크림로숀 광고><사진=금보라가 모델로 등장한 1983년 부로아메이크업 광고>[북데일리 김대홍 기자]paranthink@yahoo.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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