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과 열정` 33년 스튜어디스 인생
`자신감과 열정` 33년 스튜어디스 인생
  • 북데일리
  • 승인 2006.01.1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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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항공업계 사상 첫 임원급 스튜어디스 대한항공 이택금(56) 상무가 지난해 12월 27일 도쿄 ~인천간 비행을 끝으로 30일 정년퇴임했다. 72년 대한항공 공채 14기 스튜어디스로 입사해 총 비행시간 2만6천여시간으로 인생의 3년을 하늘에서 보낸 셈이다.

2001년 최초 여성 이사로 승진을 했고 1979년 항공업계 첫 여성과장, 89년 여성 첫 수석사무장, 92년 여성 첫 부장을 거쳤다.

지난 3일 이택금 전 상무는 SBS ‘김미화의 U’에 출연해 33년간의 스튜어디스 생활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비행, 겉으로는 담담했지만 속으로는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는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 전 상무는 이별 연습을 여러번 준비했다고 했다. 그런 준비 때문이었을까 마지막 비행은 전과 같은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33년 스튜어디스 생활을 담은 <여자로 태어나 대기업에서 별따기>(2005. 김영사)는 이택금씨가 신입사원 시절겪은 갖가지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비행기 멀미를 했던 일, 음료를 쏟던 실수, 난처한 승객을 만났을 때 대처한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불만 고객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자세는 훌륭한 서비스 마인드를 보여준다. 승객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전해진 때문일까, 33년의 근무 기간 동안 그가 책임자로 탔던 비행기에서는 한건의 컴플레인레터 (고객 불만 편지)도 없었다고 한다.

첫 사무장이 된 후 지디라는 서류에 태국어 스탬프를 깜박해 위조할 수밖에 없었던 일, 방콕을 경유하여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던 중 실수로 음식 탑재 직원이 내리지 못한 이야기는 위기 상황에 능숙한 전문가의 대처능력을 보여준다.

33년간 비행기와 함께 보냈던 우여곡절의 눈물과 웃음 중에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서비스를 받은 승객이 박수를 쳐주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2000년 폭설로 오전 10시 출발 뉴욕행 비행기가 오후 10시에 출발했지만 아무 불평 없이 승무원들을 격려 해주던 승객들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고단하시죠? 너무 고생했어요. 정말로 고생했습니다. 30년 동안 미국에 살면서 오랜만에 우리나라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인데 비행기가 안 떠서 참 속이 상했어요. 그래서 싫은 소리 한 마디 해야겠다고 기회만 보고 있었죠. 한데 너무 잘해주시는 바람에 기회를 놓쳐 버렸네요. 나이도 있으신 것 같은데 침착하게 잘하시는 것 보니까 참 좋았습니다. 편안하게 참 잘 왔어요.”(본문 중)

한 승객의 말에 주위 승객들이 하나 둘 손을 내밀며 수고했다는 말은 스튜어디스가 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1989년 여름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에서 탑승자 199명중 사망-실종 80명, 부상 119명의 여객기 참사가 발생했다. 현장에 있었던 자신도 부상을 당했지만 승객을 챙기며 책임자로서 끝까지 노력했고 8개월간의 재활을 거쳐 동료들의 도움으로 다시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쓰러져 동생은 9년째 병석을 지키고 있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났다. 직장에서 이 전 상무는 조직생활을 통해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애썼고 부하직원들에게 명령하기 이전에 솔선수범했으며 여성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한 결과 당당히 커리어우먼으로서 성공했다.

“우리 사회에서 여자는 어떤 일에 온전히 책임져볼 기회가 별로 없다. 언제 어디서나 나보다 윗사람인 남자가 있었고, 나보다 강한 보호자가 있었다. 여자라서 억울한 적도 있었지만 여자라서 봐준 적도 있었다. 책임질 기회가 적었으니 책임지는 자리에 오르기 두려운 건 당연하다. 여자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성공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성공을 두려워하지 말자. 장(長)이 되기를 꺼려하지 말자. 당신에게는 장의 경험이 부족할 뿐 장의 능력이 부족 한 게 아니니까 말이다.” (본문 중)

책은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딛는 새내기 직장인 여성들을 위한 아낌없는 조언이 가득 담겨 있다.

지난 33년을 되돌아보며 `여자`이기에 힘들었지만 오히려 `여자`이기에 잘 할 수 있었다고 당당히 말하는 자신감이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랜시간 귓가에 맴돈다.

“젊은 시절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도착이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여러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청춘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특별한 회사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 없고, 그 충만함으로 이제 어디든 새롭게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본문 중)

[북데일리 이진희 객원기자] sweetishb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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