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야`가 슬프고 `구아바`가 애절한 이유
`파파야`가 슬프고 `구아바`가 애절한 이유
  • 북데일리
  • 승인 2006.01.1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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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는 날로 먹거나 잼, 설탕에 절인 과자를 만들고 익지 않은 열매는 소금에 절여서 쓰며 씨는 독특한 맛이 있으므로 향신료로 그만인 파파야. 그 `파파야` 딸을 너무나 사랑했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 애절한 슬픔이 담겨있다면...

달걀을 거꾸로 세운 듯한 모양에 연한 붉은빛으로 향기가 좋으며 즙이 많고 달콤한 구아바 열매. `구아바`가 어두운 밤 아버지의 땅, 멕시코를 탈출하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담긴 상황을 역설적으로 상징한다면...

1920~30년대 멕시코와 미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기업형 농장노동자들과 가족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13세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성장소설 <에스페란사의 골짜기>(아침이슬. 2006)을 이루는 각 장의 제목은 과일과 야채의 이름으로 되어 눈길을 끈다.

부유한 농장주의 딸로 공주처럼 살던 주인공 에스페란사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닥친 고난과 함께 29년 대공황, 미 연방정부의 멕시코 이민 본국추방 등 역사적 사건의 급류에 휘말리면서 겪는 고통을 달콤하고 먹음직스런 과일과 채소에 비교하면서 그 역설적인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파파야와 구아바 뿐 아니라 멜론, 아몬드, 자두, 포도, 복숭아 등의 과일과 양파, 아스파라거스, 감자 등 채소는 신선하고 몸에 좋은 음식이 아니라 에스페란사가 성장과정에서 겪는 사건과 현실, 삶의 의미를 나타낸다.

<화려한 드레스, 아름다운 집, 광활한 대농장과 수많은 하인들... 어린 소녀라면 누구나 꿈꾸는 온갖 소중한 것들을 누리며 사는 에스페란사는 장차 엄마처럼 농장의 안주인이 되어 수천 에이커에 이르는 대농장 엘 란초 데 라스 로사스를 다스리게 될 터였다. 하지만 열세 번째 생일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아버지의 죽음과 화재, 재산과 사회적 평판을 목적으로 엄마와 재혼하려는 삼촌들의 흑심 때문에 에스페란사와 엄마는 농장에 하인으로 있던 미구엘 가족과 함께 도망치듯 미국으로 이주한다.

마침내 멕시코인들이 모여 사는 캘리포니아의 기업 농장에 정착한 두 모녀는 하루아침에 귀부인과 소공녀에서 농장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농장 막사의 열악한 환경, 하루하루 품을 팔아야 하는 고된 일상, 낯선 나라, 낯선 계층에 적응하는 문제, 인종 차별, 대공황이 야기한 경제적 어려움, 엄마를 덮친 무시무시한 골짜기 열병 등 갖가지 문제에 봉착한 에스페란사는 자신이 깊은 골짜기에 떨어진 느낌을 갖는다.

그러나 에스페란사는 아버지가 들려준 대지에 대한 사랑에서 힘을 얻고 잿더미 속에서 다시 부활하는 불사조처럼 골짜기를 벗어나 다시 날아오른다...>

소설가 팜 뮤뇨스 라이언(Pam Munoz Ryan)이 할머니의 실제 삶을 모델로 쓴 이 작품은 2000년 미도서관협회이 선정한 `청소년을 위한 최고의 책`이다.

저자는 "미국의 풍요와 아메리카 드림 이면에는 수많은 이민자들의 희생과 노동이 아로새겨져 있다"고 강조한다.

옮긴이 임경민은 "사춘기 소녀가 상실과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는 내면의 드라마와 인종차별, 파업을 목격하면서 깨달아가는 역사적-사회적 현실인식의 과정 그리고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사랑에 눈뜨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따뜻하고 드라마틱하게 다가온다"고 덧붙였다.

[북데일리 박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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