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②생의 오솔길에 선 시인의 뒷모습
송수권②생의 오솔길에 선 시인의 뒷모습
  • 북데일리
  • 승인 2006.01.1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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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에 견우직녀 흘린 눈물 비가 되어, 섞인 비 지나가는 칠월이다. 사랑을 하려거든 자귀나무꽃 아래서 합환주 은근히 나누고, 들배지기 맞배지기 기술을 걸어볼지어다.

“이 나라 산천 발 닿은 곳 어디서껀 마을 앞/그 흔한 며느리밑씻개 개오줌꽃도 잘도 피지 않더냐/그중에서도 손주가 없어 중간 대를 거른/방아디리손주 같은 유순한 저 자귀나무꽃 보아라/수꽃의 수술이 불꽃처럼 톡톡 튀는 여름산/비 그친 여름산을 나는 좋아하느니/밤에만 두 잎처럼 포개지는 우리 내외/아직은 즘잖게 빗장거리 밤잠을 설친 저것이 그 합환목이렷다.”(‘자귀나무꽃 사랑’)

부모님 나이 드시니 수의를 준비하고, 나머지는 말려 놓고 자녀의 혼수 준비하는 팔월이라. 어머니가 남기신 모시옷에서 북소리와 기러기소리, 등잔불 그을음 같은 한숨소리 들린다.

“어머니 장롱 속에 두고 가신 모시옷 한 벌/....../그러나 내 목젖을 타고 흐르는 클클한 향수/열새 바디집을 딸각딸각 때리며/드나들던 북소리/가는 모시올 구멍으로 새나고/살강 밑에 떨어진 놋젓가락 그분의 모습은/기억 밖에 멀지만/번갯불과 소나기를 건너온 젖은/도롱이의 빗물들/등 구부린 어머니의 핏물이 떠 있다/아 어머니의 손톱 으깨어진 땀냄새 피냄새/태모시 훑다 깨진 손톱/울 어머니 손톱/밤하늘 기러기가 등불을 차 넘기면서/뿌려놓은 한숨 같은/열새 베 가는 올의/모시옷 한 벌.”(‘모시옷 한 벌’)

온 산 단풍은 연지를 물들이고, 울 밑 노란 국화 가을빛을 뽐내는 구월이다. 지난날의 여승을 좇아 예까지 왔다. 생의 가을볕에 젖은 신발을 가만히 올려놓는다.

“이승 바다의 물은 써고 조금때/이 세상 어느 가는 길목 위에는/수백 켤레의 이렇게도 깨끗한 신발들/갈매기 먼 울음에 목이 마르다//딱, 딱, 딱, 죽비 소리 한낮의 정적이 깨이고/강원 앞뜰에 내리는 가을 햇살들/어디서 왔는지 저승 차사 같은 나비 한 마리/숨 죽이며 그 흰 신발 위를 날고 있다//아, 우리네 철늦은 목련꽃밭이나 되던가/여기는 비구니들 꽃처럼 피는 운문사/이 세상 젖은 신발들 털어 말리는 곳/내 작은 신발 한짝 그 위 고이 포개다”(‘가을 운문사’)

형제는 한 기운이 두 몸에 나눴으니, 귀중하고 사랑함이 부모의 다음이라. 시월의 산문에 기대어 보니, 산 그림자에 삶의 그늘이 일렁거려, 산다화 한 가지의 그리움이 비추이는구나.

“누이야/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지금도 살아서 보는가/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살아오던 것을/그리고 산다화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건네이던 것을//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그렇게 만나는 것을//누이야 아는가/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눈썹 두어 낱이/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山門에 기대어’)

꾼 돈 꾼 벼를 낱낱이 갚고 나니, 많은 듯하던 것 남은 것 거의 없는 십일월이다. 이승에의 인연을 떨치기가 이리 어려운가. 강물에 그리움의 눈썹을 버리고 홀로 가는 저 달.

“아침에 나가보면 호젓한 산길을/혼자서 가고 있었다/오빠수떼들의 진한 울음처럼/발 아래 꽃잎들이 짓밟혀 있고/한밤내 저민 향내 오답싹에 조금/묻혀가지고/차마 갈까 차마 갈까 애타는 걸음/조금씩 뒤돌아보듯 가고 있었다.//산길을 벗어나면 아득한 벌판/언뜻언뜻 물미는 구름 속에/꽃사당년같이 얼굴 한번 가려 흐느끼고//벌판을 나서면 가로지른 강물이/소리내여 따라오고, 거기서 너는/비로소 독부같은 마음을 지었다/검은 눈썹 밀어놓고 도끼 하나를/물 속에 버리었다//아침에 나가보면 암중같이/독한 암중같이 이제는 강을 건너/소맷자락까지 펼치며/훨훨 나는 듯이 가고 있었다”(‘달’)

하늘은 너그러워 화를 냄도 잠깐이라, 자네도 헤아려 십년을 내다보면 칠분은 풍년이요 삼분은 흉년이라는 섣달이다. 난을 치며 마음의 등을 옹송그려보는 것은 어떤가.

“난을 보고 사는 마음은/섣달 하늘의 쇠기러기 울음소리 같은 것이다//푸른 잎 사이 창창한 꽃대의 뻗쳐오름은/황산벌에 뜨는 계백의 창날인가/어린 관창을 보듯 난은 혀끝을 차며 나를 본다/얼마나 가야 나는 이 세상 용서하는 법을 배울까/아침마다 난은 제 그늘로 꽃대를 휘며/이 세상 너무 늙고 오래되었다 네 갈 길을 가라/스스로를 가르친다/휘어져라 휘어져라 곧은 잎새뿐 아니라/저무는 수락산도 그 잔등에 솔숲을 깔아/비탈길 내는 법을 안다고 타이른다//그 비탈길 위에 고깔 쓴 여승도 올려놓고/언뜻언뜻 장삼자락도 얼비쳐내면서/그렇지 않느냐 우리 사는 법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蘭을 보고 사는 마음은/섣달 갈밭 사이 길을 가는 쇠기러기 울음소리 같은 것이다.”(‘난’)

화선지 위에 붓을 올리니 솔숲에 길 하나 생긴다. 생의 오솔길에 파리한 여승, 아직도 먼 길을 가고 있다. 쇠기러기 끼룩하고 울자, 고깔 쓴 여승이 뒤를 돌아다본다. 각시붓꽃처럼 파리한 눈썹이 가늘게 떨고 있다. 도련님은 아직도 산문에 기대어 여승을 바라보고 있으리라.

(그림 = 원성스님 작품 `해인삼매`)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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