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결백 ‘저우언라이 총리’가 주는 감동
청렴결백 ‘저우언라이 총리’가 주는 감동
  • 북데일리
  • 승인 2006.01.1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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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자신의 옷을 수선해 입었고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인민들과 함께 했던 ‘영원한 인민의 벗’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 총리의 사망 30주기를 맞아 8일 베이징청년보가 저우언라이 총리의 ‘가규 10조’를 소개했다.

▲후배가 공무를 제쳐 놓고 총리실을 찾게 해서는 안된다.
▲총리 방문자는 모두 국무원 초대소에 묵게 한다.
▲식당에선 모두 줄을 서 밥과 반찬을 타야 한다.
▲극장 갈 때 무료 초대권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사람을 초대하거나 선물을 해서는 안된다.
▲공무 차량을 사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개인적인 일은 스스로 처리하고 남을 시켜선 안된다.
▲생활을 질박하고 검소해야 한다.
▲어떤 경우든 총리와의 관계를 밝혀서는 안된다.
▲사리를 도모해선 안되며 특권층이 돼서는 안된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청렴결백한 생활 습관과 신념이 아닐 수 없다.

저우언라이는 자신을 화장해 고향산천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사망당시 남긴 유산이 단돈 5000위안(한화 65만원)이었을 정도로 평생 검색한 삶을 살았다. 또한 뛰어난 정치가였던 그를 향해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마오쩌둥이 없었다면 중국의 혁명은 결코 불붙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우언라이가 없었다면 그 불길은 다 타서 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라고 평한 바 있다. 마오저뚱의 뒤에서 1인자가 아닌 ‘2인자’의 자리에 서서 민중을 위해 평생을 바친 저우언라이의 삶은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훌륭한 귀감이 된다.

인간 저우언라이에 대한 보다 깊은 이야기는 <저우언라이평전>(한얼미디어. 2005)를 통해 들을 수 있다. 평생 근검절약했고 가난한 인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헌신했던 저우언라이의 모습이 책 곳곳에 담겨있다.

“저우언라이는 늘 간부와 병사들에게 민간인들이 국민당 부대의 약탈과 학살 등에 시달려 생활이 피폐해있으므로 민가에 절대로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스완진(石灣鎭)을 지날 때에는 곡식들이 제대로 추수되지 못해 논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간부들이 그 곡식이 국민당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불살라 버리자고 주장했지만 저우언라이는, ‘안 된다. 곡식은 인민의 피와 땀이다. 한 뿌리도 불 태워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본문 중)

인민의 노동을 귀하게 여기고,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갔던 그는 사리사욕에 눈이 먼 정치인들과는 다른 정치인이었다.

평전은 덩샤오핑이 주도적으로 진행한 ‘4개 현대화’ 노선은 이미 저우언라이에 의해 주창된 정책이었음을 밝히고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해 중국 현대화의 초석을 깔았던 그의 정치행보도 담는다.

정치가로서 그의 협상력은 따를자가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평가받는다. 반둥회의에서 “공통점을 추구하고 차이점을 존중한다”는 원칙 하에 ‘영토 주권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내정불간섭, 평등 ?호혜, 평화공존’, 즉 ‘평화 5원칙’을 통과시켰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핑퐁외교’를 시작했으며, 1972년 미국 대통령 닉슨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성사시키는 업적을 남겼다.

“저우언라이의 외교는 신중국 외교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 실린 미국과의 위성기지국 설비 협상과정을 통해 쳰치천(錢其琛) 중국 전 외교부장의 이런 평가가 결코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협중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은 매체 전송을 위해 위성기지국 설비를 직접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이에 저우언라이는 미국 측이 위성기지국 설비를 가지고 오면 중국이 구매하거나 임대해 외신기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겠다고 했다. 미국은 그 비용은 100만 달러가 넘을 것이니 임대하는 것보다는 자신들이 가지고 가는 것이 낫다고 제안했다.

그때 저우언라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는 단순한 금전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주권과 관계된 문제이다. 미국으로부터 기지국 설비를 임대할 것이며, 임대 기간 동안은 기지국 설비의 소유권은 중국 정부에 속하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먼저 중국에 사용 허가를 신청하고, 중국은 미국에 사용료를 청구할 것이다. 사용료는 임대료와 맞먹는 수준일 것이다.”

당찬 저우언라이의 결기에 결국 미국은 저우언라이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중국 중앙문헌 연구실 저우언라이 연구팀장을 역임한 저자 리핑(力平)이 각종 문헌 자료와 기록물들을 통해서 저우언라이의 일생을 재구성한 평전으로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의 정치행보와 삶에 대한 평가는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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