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하고 웃기고 섬뜩하고 `수상한 식모들`
신선하고 웃기고 섬뜩하고 `수상한 식모들`
  • 북데일리
  • 승인 2006.01.0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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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수상한 식모들>(문학동네. 2005)>은 2005년 마지막으로 만난, 가장 신선한 발상의 `픽션`이다. 진중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한 의미까지 더해져 신예작가 박진규(29)의 앞날을 기대하게 만든다.

<수상한 식모들>이라는 제목의 기발함은 소설의 내용과 구성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130kg이라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고된 청춘을 보내야 하는 주인공을 둘러싼 식모의 음산한 기운은 영락없이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를 연상케 한다.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가득한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는 한국영화의 걸작으로 추앙받는 작품이다. 중산층 가족을 서서히 파괴해나가는 하녀는 ‘본의 아니게’ 팜므 파탈로 변해가는 불운의 존재다.

박진규는 영화 ‘하녀’를 작품 안에 등장시키며 도발적이고 히스테리컬한 하녀의 이미지를 팽창시킨다.

“아버지의 방에는 ‘하녀’의 DVD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하녀’의 리메이크작인 1971년 개봉작 윤여정 주연의 ‘하녀’와 1982년에 나온 ‘화녀’의 리메이크판도 가지고 있다. 이 물건들은 아버지가 결혼할 때도 딸려왔고, 돈암동에서 대치동을 거쳐 마장동으로 이사 올 때까지 따라붙었다. 그러고 보면 하녀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이어지는 아버지의 성적 판타지는 제법 웅장한 산맥을 형성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마장동으로 이사하고 짐을 풀면서 그 자료들을 발견한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당장에 아파트 단지 내 쓰레기통에 처넣고 불을 질렀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아버지는 슬리퍼 바람으로 뛰쳐나가 쓰레기통을 뒤졌으나 ‘하녀’들은 이미 모두 사라진 뒤였다. 그 후, 아버지와 엄마의 긴 냉각기가 이어졌다. 더구나 하녀 DVD는 영원한 품절상태였다” (본문 중)

이미, 경계가 무의미해진 소설과 영화 사이에서 작가는 자유롭게 헤엄친다.

주인공이 겪는 환각을 묘사하는 문체와 인물의 내면갈등에서 김영하, 박민규, 김경욱으로 이어져 온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문학적 모더니티가 발견된다.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간’ 가족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시니컬하기 그지없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아는 척 하며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한 식탁을 공유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때때로 공포와 환멸로 다가온다.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는 하녀의 정체를 찾아가는 미스테리한 구조에서 발견되는 70~80년대 ‘계급문화’의 폭력과 희생은 모두가 잊고 싶지만 누군가에게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상흔’이다.

“어땠든 수상한 식모들은 암울하고 획일적이었던 우리 사회에 흔치 않은 튀는 인물들이었다. 그녀들은 이중의 삶을 살았고 남의 집 살림을 관리하면서도 동시에 그 가정을 파괴하는 작업을 비밀리에 진행시켰다. 그러나 결국엔 수상한 식모라는 직함을 너무나 손쉽게 내던지고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일생을 보내기도 했다. 자신들이 부리는 식모를 뻔뻔하게 구박하고 학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수상한 식모들은 순수했다. 그들 중 누구도 어떤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폼을 잡거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무고한 이들을 살인하지는 않았다.” (본문 중)

베일에 가려진 ‘식모’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중반부터 약간의 산만함도 발견되지만 이마저도 뛰어난 상상력 덕에 매력적인 자유로움으로 비쳐진다.

박진규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후 다양한 희곡작품을 쓰기도 하고 직접 무대에 올라가 연기도 했다. 그 과정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이 매우 병약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이유로 상대적 의미인 130kg이라는 거구를 주인공으로 창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뚱뚱한 몸’을 가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사회의 가장 낮은 계급으로 취급받는 ‘하녀’라는 직업은 외모와 계급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의미한다.

“이 작품은 기존 소설 독법을 배반한다. 쓸데없는 허튼 상상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은데 다 읽고 나면 의외로 묵직한 울림을 준다. 결코 만만한 얘기가 아니라는 증거”라는 심사위원 신경숙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밝히지 못하는 것은 기막힌 반전만이 아니다. <수상한 식모들>을 만날 독자를 위해 함구해야 할 허를 찌르는 상상력이 차고 넘친다. 차기작이 벌써 궁금해지는 작가의 재기가 순간이 아니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진 =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 스틸컷)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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