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오대수의 딜레마 `너는 누구냐`
`올드보이` 오대수의 딜레마 `너는 누구냐`
  • 북데일리
  • 승인 2005.12.2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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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영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중 오대수(최민식)가 이우진(유지태)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는 장면.

오대수: 누구냐, 넌?

이우진: 옷은... 마음에 들어요?

오대수: 날... 왜 가둔거냐?

이우진: 누굴 것 같애요?

영문도 모른채 15년 동안 골방에 갇혀 지낸 오대수는 아내를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이 된채 도주한 것으로 누명을 쓰게 된다. 그리고 역시 갑자기 이유없이 풀려나온 그가 오대수임을 증명해 줄 사람은 친구 주환(지대한) 뿐이지만 그 역시 우진에게 살해당한다.

딸을 찾기 위해 공권력의 힘을 빌릴 수도 없어 `신분증명의 딜레마`에 빠진 오대수가 극복해야할 난관은 첩첩산중이다.

이 딜레마는 500년 전에도 존재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마을에서 사람들이 뚱보 목수를 속이기로 한다. ‘뚱보 목수’의 신분 대신 ‘마네토’라는 다른 사람으로 덮어 씌운다는 것. 마네토는 ‘친절하지만 약간 모자란 데’가 있는 사람이었다.

뚱보 목수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어이, 마네토 안녕?” 하고 인사를 하고, 뚱보 목수가 자신의 집에 들어가려 해도 “누가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느냐”며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또 마네토가 진 빚 때문에 법원에 잡혀가기까지 한다. 뚱보 목수는 자신은 마네토가 아니라 뚱보 목수라고 필사적으로 외치지만 사람들에게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뿐이다.

오대수와 달리 뚱보 목수는 이렇게 묻는다.

“아니, 그럼 나는 누구야?”

신분증명의 역사를 다룬 책 <너는 누구냐?>(청년사. 2005)는 사회역사적 지배통치 구조를 `신분증`으로 풀어냈지만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읽힌다. 공권력이 통제 가능한 개체의 수를 확정짓는 새로운 권력의 수단이고 신분증은 이를 가능케 하는 형태임을 쉽게 설명한다.

사회이론이나 추상적인 담론을 말하지 않고 신분증의 사회사를 통해 그 변천 과정을 살피는 내용은 문화와 풍습, 과학적인 호기심까지 충족시키고 있다.

최초의 신분 증명 명부는 종교적 목적에서 탄생했다. 15세기 들어서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병사에게 신분증이 발급되었고 15세기 후반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은 `위생증`의 도입으로 이어져 신분증에 영향을 끼쳤다.

또 피부색이나 흉터, 점, 문신 등 신체의 특징이 신분 증명의 표식이 되었던 사례가 흥미롭다. 신분증 위조와 관련해서는 "관인과 스탬프 등으로 그림을 복제하고 인쇄술로 동일한 내용의 증서를 대량생산하는 것으로 신분 확인이라는 문제를 새롭게 해결한 제도의 산물인 셈"이라고 평한다.

특히 신분증명이 국가의 통치를 위한 효율적인 지배수단이라는 사실은 신분증을 훼손하거나 내용을 조작하면 공공재산 훼손 혐의로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는 반증이다.

“여러 새 기술들에도 불구하고 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부정의 논리’는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다. 우리가 아무리 깔끔하고 확실한 신분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신분을 보증해 주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닌 공권력이기 때문이다. (중략)결국 신분증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다. 각기 전문 분야를 맡고 있는 관청들이 합심해서 인증해 준 공권력, 이게 바로 우리 신분의 주인이다.”(본문 중)

오대수는 `오대수`이고 뚱보 목수는 `뚱보 목수`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이젠 국가기관이 발급한 신분증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인물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누구냐, 넌!!!`

[북데일리 박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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