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폴란스키의 `올리버 트위스트` 역시 다르네
로만 폴란스키의 `올리버 트위스트` 역시 다르네
  • 북데일리
  • 승인 2005.12.2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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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저널리즘을 뛰어난 상상력과 조합시킨 찰스 디킨스(1812~1870)의 문학은 세기를 넘어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빈곤했던 가정 형편 때문에 정규교과과정을 이수하지 못하고 12세부터 공장에 나갔을 정도로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디킨즈는 15세 때 변호사 사무소의 사환과 법원 속기사를 거쳐 신문기자가 됐다.

고전을 탐독하며 갖춰 온 문학 실력이 어린기자 디킨스에게는 큰 도움이 됐다. 잡지에 단편을 투고하며 이름을 서서히 알리기 시작한 그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려준 작품은 1838년의 <올리버 트위스트>(동쪽나라. 2004)다.

셰익스피어와 함께 영국 문학역사상 가장 사랑 받은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디킨스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은 대단하다. 당시 "나는 디킨스를 읽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는 모임이나 파티에서 왕따를 당했다는 풍문도 전해진다.

유년시절 체험한 가난과 뒷골목에서 목격한 사회의 부조리를 예리하게 짚어 낸 디킨즈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동화작가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유려한 유머와 해학 뒤에서 날카로운 사회비판 시선을 번뜩일 줄 아는 위대한 문호였다.

디킨즈의 소설이 영화화 된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29일 개봉할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의 감독이 거장 로만 폴란스키라는 사실은 이례적이다.

소년원에 들어가서까지 엄청난 일감을 감당해야 했던 가난한 소년 올리버 트위스트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해야 하는 어린노동자다. “죽 한 그릇만 더 주세요” 소년의 애절한 간구는 음산한 런던의 야경과 어우러진다.

2차대전을 겪으며 부모를 수용소에 빼앗긴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와 참혹한 유년시절을 겪은 디킨즈 사이에 흐르는 가장 큰 공감대는 ‘공포감’ 이다. 전작 ‘피아니스트’에서 보여준 황폐한 전쟁터와 어린 소년 올리버 트위스트가 뛰어다니는 영국의 뒷거리는 그리 다르지 않다. 작가와 감독이 바라보는 가난과 폭력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소년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이미 1948년 데이비드 린이 영화화했고 1968년 캐롤 리드가 뮤지컬로 올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바 있는 ‘올리버 트위스트’는 로만 폴란스키에 의해 보다 ‘사적인’ 작품으로 변형됐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아역 연기자들의 얼굴에서 표현되는 두려움을 포착한 카메라는 로만 폴란스키 작품이 갖는 특유의 ‘공포감’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범죄와 가난의 런던을 바라보는 디킨즈와 로만 폴란스키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을 목격하는 즐거움이 크다. 원작의 무게를 떠올린다면 ‘필름포럼’에서 단관 개봉한다는 사실은 다소간의 아쉬움이다.

(사진 =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 스틸컷)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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