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사유 그리고 음악 '에세이의 완숙함'
감성, 사유 그리고 음악 '에세이의 완숙함'
  • 김지우기자
  • 승인 2012.02.14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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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나의 서양음악 순례'...함께 손잡고 듣는 듯

[북데일리] [이책 강추!] 오솔길로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나무 숲 사이로 은은한 음악이 들려온다. 희열과 비탄, 절망과 분노가 바람을 따라 춤을 춘다. 잠시후 음악이 멈추면 오솔길엔 적막이 쌓인다. 남자는 쓸쓸히 사라진다. 남자는 그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낸다. 재일교포 서경식이 쓴 <나의 서양음악 순례>(창비. 2012)가 딱 그런 느낌이다.

보헤미안 적 사유와 은둔자의 감성이랄까. 읽는 이의 마음을 음악 속으로, 오페라 현장 속으로 몰고 가는 힘이 있다. 책은 서양음악에 매혹된 저자가 쓴 매력적인 글 모음이다. 매력은 마력과 맞닿아 있다. 마치 음악이 그러듯이.

음악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다. 한없는 청순과 고귀함, 그리고 바닥 모를 질투와 욕망을 동시에 지닌 존재, 이쪽의 이해를 거부하면서 끌어당기고는 다시 뿌리치고 농락해 마지않는 존재, “어디가 그렇게 좋다는 거지?” 하고 누가 물어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존재, 한마디로 불가해한 여성과 같은 존재, 그것이 음악이다. -본문 중

젊었을 땐 위험에 도전하거나 피하려 들지만 나이 들면 위험조차 즐기거나 껴안으려 한다. 위험도 세월이 지나면서 그 강인한 근육이 노쇠해지는 탓에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 저자에겐 음악이 그렇다.

‘음악에 깊이 빠지는 것은 여자한테 깊이 빠지는 것과 같아서 평온하게 살고 싶은 보통 사람에겐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위험한데도 연을 끊을 수 없다. 나도 어느 새인지 음악에 빨려 들어가 이렇게 음악에 대한 글까지 쓰게 됐다.’

책엔 많은 서양 음악이 등장한다. 그가 썼던 전작 <나의 서양미술 산책>이 시대를 화두 삼아 쓴 책이라면, 이번 책은 한 개인이 녹아 들어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에서부터 죽음에 대한 성찰까지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음악을 통해 들려준다. 특히 순례라는 말에 맞게, 집 안이 아닌 라이브 현장에서 듣는 음악이어서 실감 난다. 독자들은 저자의 안내에 따라 잘츠부르크 음악제와 같은 명소를 직접 체험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현란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일렁임을 주는 글 솜씨는 에세이의 완숙한 경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자신의 음악순례를 ‘죽음으로의 여행’이라고 말한다. 이 말처럼 곳곳에 애잔한 분위기가 드러나 읽고 나면 서정주의 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이 같은'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모짜르트(돈 조바니!)에서 슈베르트, 바그너를 거쳐 말러에 이르는 음악의 세계는 바로 ’죽음‘으로 에워싸여 있다. 특히 19세기 음악이 그렇다. 음악이라는 예술 자체가 본질적으로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더 ’죽음‘과 결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리듬은 심장 박동의 반영이다. 음악의 종말이 천둥소리같이 큰 음향이든 정밀한 페이드아웃이든 심장박동은 끊임없이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쇼스따꼬비치도 리히테르도 ’죽음‘을 향한 순례여행을 마치고 이런 저런 작품과 연주를 우리에게 남겼다. 그러니 나의 음악 순례가 ’죽음‘을 향한 여행이라는 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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