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명불허전,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 김현태기자
  • 승인 2011.12.12 1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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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책의 원류...50년 된 책 불구 여전히 백미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북데일리] E.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예경. 2003)은 지식인 사이에선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전설처럼 내려왔다. 마치 대학 교재처럼 딱딱하고 무거운 느낌의 제목과 판형 그리고 분량은 독자의 기를 죽인다. 그러나 어쩌랴. 일생에 한 번은 읽거나 최소한 집에 두고 가끔 제목이라도 감상해야 할 책이거늘.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보내는 찬사 중 하나는 ‘명불허전’이다. 당연히 그 이름값을 한다. 이 책은 무려 태어난 지 50년이나 됐다. 그 간 무수한 미술책이 등장했다. 근래들어 인문학적 트렌드에 힘입어 관련 서적의 출간은 예전에 비하면 쏟아져 나온다고 할 정도다.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 모든 미술을 소개하는 책의 원형이자 뿌리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영감을 받았을 것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내용을 각색해서 드러낸 책도 여러 권이다. 물론 부분이겠지만. 독자들은 최근에 읽거나 주워들어 알게 된, 미술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50년 전의 이 책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것이다.

네덜란드의 화가 ‘반 에에크’ 이야기가 그것이다. 저자는 14세기 북유럽의 섬세하게 자연을 그린 ‘사실 묘사의 경향’을 ‘최종적으로 완성한 화가‘로 반 에이크를 꼽는다. 더 나아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표현한다고 느껴질 만큼 혁명적인 창의성을 보인‘ 화가이다. 저자는 ’그의 예술은 초상화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에 도달했다‘며 유명한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을 소개한다. 수많은 상징으로 구성된 그의 그림은 지금도 많은 미술 책에 나온다. 그런데 그에 대한 해석은 이미 이 책에 다 등장하는 것이다.

유명 작품에 대한 해박한 식견과 그것을 표현하는 글의 묘미는 단연 압권이다. 그 독창적인 설명은 독서의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이 벽화에는 너무나 풍부한 질서가 있으며 또한 이 질서 속에는 너무나 다양한 변화가 내재해 있음으로 하나의 움직임과 그것을 받는 움직임 사이의 조화를 이룬 상호작용을 보려면 끝이 없다.’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에 우리를 감탄하게 하는 것은 리자라는 인물이 놀라울 정도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모나리자>

좋은 책은 독자가 모르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라파엘로가 그렇다. 1504년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가 경쟁하던 시절, 홀연히 나타난 라파엘로는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이다. 그가 그린 <요정 갈라테아> 역시 익히 아는 그림이다. 그러나 그 그림이 왜 중요한지 알기 위해선 대가의 인도가 필요하다.

‘라파엘로는 그림이 불안정하거나 균형을 잃지 않게 하면서 화면 전체에 끊임없는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물들을 배치하는 탁월한 솜씨, 구도를 만드는 최고 극치에 달한 숙련된 솜씨로 인해 후대의 미술가들이 그를 그처럼 찬양했던 것이다.’ 319쪽

책에 따르면 라파엘로는 모차르트만큼 젊은 나이인 37회 생일날에 사망했다. 그러나 그 짧은 인생 동안 놀랄만큼 다양한 예술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에 대한 한 묘비명은 미술사의 극적인 한 장면을 드러낸다. 이 한 권만으로 다른 10권의 ‘미술 책’을 능가한다.

‘여기는
생전에 어머니 자연이
그에게 정복될까
두려워 떨게 만든
라파엘로의 무덤이다.

이제 그가 죽었으니
그와 함께 자연 또한
죽을까 두려워하노라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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