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도 기묘한 ‘시간의 이빨’
슬프고도 기묘한 ‘시간의 이빨’
  • 북데일리
  • 승인 2005.12.16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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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의 목적은 지연시키는 것.

결국에 가서는 모든 무게는 무너지며,

긴장은 풀리게 될 터.

해가 거듭되고 몇백년이 지나면

그러한 일이 벌어지게 되리라.“

-앤 래 요나스 Ann Rae Jonas 의 <구조>에서

책을 여는 이 말이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단, 다섯줄이지만 5년 혹은 50년을 담고 있는 듯 한 느낌으로 뒷장으로 독자의 손목을 붙잡는다. 지연은 무게를 무너뜨리며 무너진 곳에서 긴장은 풀린다. 그러나 그런 시간의 번복을 느낄 수 있는 특권은 ‘나이 먹은 자’에게만 주어진다.

`푸른 젊음`은 무너지는 곳에서 긴장의 풀어짐이 아닌 분노와 좌절을 느끼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시간의 이빨>(영림카디널. 2005)은 나이 든다는 것과 쇠락을 짓궂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저자 미다스 데커스 Midas Dekkers의 생물학자 다운 다양한 생물학 지식과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향해 오히려 ‘미소’를 띄우는 유머러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좀더 나은 상황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나이 먹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사람들은 최고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들을 쌓아간다. 최고가 못되면 그 다음 두 번째 가는 자리가 목표가 된다.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인간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된다. 집, 정원, 배우자, 벽난로 위에 놓인 양치기 인형, 그리고 정원의 개 등등, 다시 말하면 점차 상황이 좋아지면서 비록 정상이 잘 보이지 않아도 점점 더 가까워져진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을 말 그대로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본문 중)

저자는 고양이에게는 필요 없는 ‘경력’이 인간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비단 직군을 기준으로 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저, 시간을 보낸 흔적을 기억하는 늙은 육체만 있다면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력’ 이 된다.

순간, 영화 ‘브로큰 플라워’의 빌 머레이가 남긴 대사가 떠오른다.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삶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여기 있는 건 현재 뿐이고, 이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전부구나"

영화 속에서 수년전 헤어졌던 애인들에게 찾아가는 남자를 무겁게 짓누르는 존재는 어디선가 자라고 있을지 모를 자신의 아들이다. 아들이라 추측되는 청년에게 샌드위치를 사주고 던지는 빌 머레이의 이 대사는 책이 말하는 ‘경력자’의 여유와 앤 래 요나스 Ann Rae Jonas 가 말한 ‘무방비’를 담고 있다.

`주름 없는 얼굴, 실패를 모르는 몸, 죽음과 부패를 막아주는 이런 젊음이 지나간 후 늙고 파괴되는 조각들을 어떻게 마주볼 것인가?` 는 책의 질문은 가볍지 않다. 노년에 대한 인식을 생물학적의 차이로 보여주는 1장의 ‘삶의 사다리’에서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같은 폭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삶의 사다리를 통해서 우리는 늘 같은 속도로 꾸준히 늙어간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기는 나중에 자신이 겪을 그 어떤 시기보다도 이 시기에 더 빨리 늙어간다. 죽는 것이 노인들의 책임은 아니다. 삶의 활력을 모두 소진시킨 것은 노인의 육체가 아니라 젊은 육체이기 때문이다.”

라고 던지는 저자의 말은 인상적이다. 죽음이 모든 활력을 소진시킨 젊은 육체라는 지적 때문이다.

여기에는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라는 요구가 아닌 `과학적` 시선으로 시간의 흐름을 바라 보라는 `부탁`이 담겨있다.

예술품, 건축물, 책과 같이 인간이 이룩한 문화가 자연의 공격으로 마모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시간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몸의 변화를 말하는 3장 ‘위대한 파괴’에서는

“잠시만 관리를 게을리 해도 뉴욕의 아스팔트에는 풀이 자라고, 지하실엔 물이 고이고,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붕괴된다. 문화가 유지되려면 끊임없이 자연의 공격을 방어해야 한다. 자연과의 전쟁에서 휴전이란 결국 후퇴를 뜻한다. 어떻게 자연은 늘 이렇게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 자연과 관련된 이러한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어째서 인간은 늘 정상의 상태가 아닌 예외의 경우에서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

라고 말한다.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를 인간의 힘과 지혜로 막을수는 없을까? 그것역시 삶의 흐름의 일부로, 변화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저자의 끊임없는 고민이 독자의 자연스러운 참여를 유도한다.

네덜란드의 저명한 생물학자가 보내온 생물학적 지식들은 하나 같이 지식외의 특별한 의미를 ‘덧’ 입고 있다.

나이든다는 것, 소멸 된다는 것, 붕괴된다는 것. 어쩌면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인 동시에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사진 = 영화 `브로큰 플라워` 스틸컷)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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