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어있던, 우리가 `처음 만나던 때`
텅 비어있던, 우리가 `처음 만나던 때`
  • 북데일리
  • 승인 2005.12.1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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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하늘을 나르는 새처럼/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다시 새 날을 시작하고 있다.”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이란 시다. 이십여년을 감옥에서 보낸 선생에게 저녁은 새봄을 맞이하는 시작인 셈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꼿꼿이 서 있는 선생의 붉은 담벼락 너머로, 김광규 시인이 특별과거열차에 몸을 싣고, 우리가 <처음 만나던 때>(문학과지성사. 2003)를 회상하며 가고 있다.

차창 밖으로 어둠이 밀려왔다 밀려가는데, 밤하늘에 별들이 물빛처럼 반짝인다. 노인의 눈 속에 비친 샛별이 투명하게 반짝인다. 먼 곳에서 손님이 오시는 날이다.

“배가 둥그런 엄마와 빼빼 마른 아빠가/예쁜 서랍장을 새로 사들이고/손바닥만 한 옷가지와 골무만 한 신발들/정성껏 빨아서 말리고/....../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님이 그늘에서 쉬도록/비치파라솔까지 마당에 세웠다/온 가족의 이 부산한 준비를/손님은 모를 것이다/집에 도착해서 함께 살면서도/아기 손님은 모를 것이다/....../스스로 손님을 맞이하면 어렴풋이 알게 될까/자기가 이세상에 태어나기 전에/엄마와 아빠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바깥 세상에서 어떻게/자리를 맞이할 준비 했는지” (‘손님맞이’)

손님이 오늘의 법석을 깨달을 즈음이면, 할아버지는 손님이 이 세상에 오느라 비워두었던 별자리로 다시 가 있을 것이다. 돌아가기 전에 손님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것으로 풍성했던 손님맞이 잔치는 저문다.

“일찍이 내가 올라갔던 산/건너온 강/몇 개 되지 않지만 그 이름들조차/모두 기억하지는 못한다/....../술 한번 함께 마셨다고/절에 한 번 같이 갔다고/그 이름을 유행 가수처럼 소리쳐/부를 수 있나/진실로 사랑하고 흠모하는 이를/강아지나 고양이 부르듯 그렇게/부를 수 있나/목청 높여 연호할 수 있나/가만히 입속으로 되뇌어보거나/가슴속에 간직한 채 혼자서/아껴야 할 이름” (‘이름’)

확실한 사랑의 도장을 찍어서 이름표를 붙인다고 이름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찌보면 이름은 생에 대한 정의이므로 함부로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망설이는 사이 아이는 커서 할아버질 닮아 시인이 되려는 것인가.

“두 돌이 가까워오자 아기는/말을 시작합니다/엄마/아빠/물....../강아지는 뭉뭉이/고양이는 야우니/그 다음에는/시여....../싫다는 말입니다//벌써/세상이/싫다니요” (‘시여’)

놀라운 일입니다. 두 살에 이미 세상을 알고, 등단을 하다니요. 다산이 첫 시를 지은 것이 일곱 살이니, 그보다 다섯 해가 빠른 거지요. 이렇게 재능 있는 아이를 위해 할아버지는 기꺼이 제 등을 내어줍니다.

“우리집 대추나무는 너무 늙어서 몇 년 전부터 열매가 맺지 않는다. 그래도 정정한 늙은이처럼 잎은 여름마다 무성하게 돋아나 산비둘기와 매미들을 불러들인다.//...옆집에서 슬그머니 담을 넘어온 호박 덩굴이 며칠 사이에 3층 높이의 대추나무 우듬지까지 기어 올라가 샛노란 호박꽃을 공중에 피워놓았다...... 가을로 접어들자 대추나무 가지마다 커다란 늙은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나무의 이름을 묻는 사람에게 나는 ‘詩나무’라고 대답해주었다” (‘詩나무’)

그러면서도 할아버지는 서둘러 열매를 맺으려는 호박넌출을 넌지시 잡아줍니다. 할아버지와 손님으로 처음 만나던 때의 설레임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합니다.

“조금만 가까워져도 우리는/서로 말을 놓자고 합니다/....../말이 거칠어질수록 우리는/친밀하게 느끼고 마침내/멱살을 잡고/싸우고/죽이기도 합니다/처음 만나 악수를 하고/경어로 인사를 나누던 때를 기억하십니까/앞으로만 달려가면서/뒤돌아볼 줄 모른다면/구태여 인간일 필요가 없습니다/....../서먹서먹하게 다가가/경어로 말을 걸었던 때로/처음 만나던 때로 우리는/가끔씩 되돌아가야 합니다” (‘처음 만나던 때’)

손님이 주인으로 성장할 즈음, 할아버지도 손님이 되어 그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먼저 간 자의 뒷모습과 자신의 뒷모습을 주인에게 전해주고, 십자성 반짝이는 따뜻한 남쪽으로 떠날 준비를 합니다.

“무덤의 봉분을 둥그렇게 쌓아올리자,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망자와 생자는 죽은 날이 아니라, 파묻는 날 헤어지는 것이다.//......//오래된 제비집이 사그라져가고 있었다...... 서둘러 모든 일을 정리하고, 혼자서 떠날 준비를 해야 할 차례였다. 아쉬운 전송을 받으며 먼저 떠난 자는 얼마나 행복한가.//하지만 떠나는 자를 배웅하면서 그 뒷모습을 기억하는 것은 뒤에 남은 자의 몫이 아닌가. 간직한 뒷모습의 기억을 전해주고 스스로 떠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 또한.” (`남은 자의 몫‘)

제비 한 마리 낮게 날아와 창을 스치더니 밤하늘로 휑하니 날아갑니다. 제비는 이승에서의 아름다운 기억의 지푸라기를 물고 올라 누런 별집 한 채 짓습니다. 텅 비어있던 한 곳이 채워지면서 갑자기 우주가 충만해 집니다. 처음, 그러했던 것처럼...

(사진 = Howie Scher 작품. 출처 http://grove.ufl.edu/~hscher/home)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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